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집에서 밀키트(meal kit)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밀키트란 4세대 HMR(가정간편식)으로 ‘식사를 만들 수 있는 모든 편의가 갖춰져 배달되는 키트’를 뜻한다. 전자레인지에 상품을 데워먹는 일반 가정간편식과 달리 손질이 끝난 식재료와 양념이 포장된 상품이다. 동봉된 레시피 카드를 보고 15~30분 정도 조리하면 그럴싸한 한 끼가 완성된다. G마켓에 따르면 지난 2월 19일부터 3월 3일까지 밀키트 판매량은 전월 대비 604% 급증했다. 전년 대비로는 310%가 증가한 수치다. G마켓에서 많이 팔린 밀키트는 주로 밀푀유나베 스테이크 샤브샤브와 같은 주력 제품과 찌개류가 주를 이뤘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심플리쿡의 판매량도 늘었다. 같은 기간 심플리쿡의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182.5% 증가했다.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의 개학이 오는 재차 연기되면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간식류 판매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같은 기간 프레시지의 밀키트 판매량은 40% 증가했다. 전년 대비로는 220% 증가율을 기록했다. 블랙라벨 스테이크와 감바스 알 아히요를 중심으로 판매가 늘었다. 프레시지에서도 찌개류의 판매가 급증했다. '우삼
외식업 창업은 쉽게 마음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업을 한다는 것이 누구에겐 30년 일한 퇴직금을 모두 건 일이 될 수 있고, 다른 누구에게는 절박하게 빚을 지면서까지 도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외식업에 뛰어드는 모든 사장님들 중 절박하지 않은 사장님이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절박함과 사업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30대 커피숍 사장님의 한숨] U사장님은 커피숍을 오픈하기 전까지 영어 강사로 살아왔다. 영어 강사의 삶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월급날이면 안정적으로 급여가 들어왔고, 주변의 시선도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해가 거듭 될수록 가르치는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학부모와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영어 강사의 꿈을 품고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의 자리까지 왔지만 스트레스 때문인지 온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기도 하고 가끔은 구토가 나오기도 했다. U사장님은 여러 고민을 하던 중 평소 관심 있었던 카페창업이 불현듯 생각났다. ‘나도 작은 카페 하나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U사장님이 영어 강사로 일을 하며 갖았던 유일한 취미는 카페 방문이었다. SNS를 통해 가고 싶은 카페를 정하고 출근 전에 시간을 내서 카페를 찾아 다녔다. 취미가 카페 다니기였다보
2020년 2월 일본 도쿄 아자부쥬방에 ‘Bistro plein AZABU’가 오픈하였다. 오모테산도의 ‘Bistro plein OMOTESANDO’를 운영하는 PLEIN이 운영하는 매장으로 지비에(수렵육 요리), 유기농 채소 샐러드 등의 코스요리부터 아라카르트(자유롭게 주문하는 단품요리)까지 제공하는 비스트로다. 대표인 나카오 타이치씨는 현재 28세로 25세 때 ‘외식산업을 동경할 수 있는 일로 만들자’라는 비전을 내걸고 회사를 창업하였다. 창업의 시작점인 오모테산도 매장의 정기휴일을 월, 화요일 이틀로 정하고 직원들의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5일 저녁 영업만으로 월 매출 6백만엔 이상을 올리는 화제의 매장이 되었다. 노동환경에 대해 직원들의 높은 만족도를 추구하며 실현하고 있는 일본에서 주목하고 있는 젊은 경영자가 2번째로 오픈하는 매장이다. 고등학생 때 음식점 창업을 꿈꾸며 조리전문학교로 진학 대표인 나카오 타이치씨의 지금까지 요식업 관련 경력이 매우 다양하다. 고등학교 시절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하여 3개월만에 점장 대리까지 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덕분에 ‘일한 만큼 평가받을 수 있다’는 요식업에 대
일본 후쿠오카에 중학교 동창이 힘을 합쳐 만든 중식당 ‘China stand 두 마리 토끼’가 있다. ‘China stand 두 마리 토끼’는 후쿠오카에 9개 점포를 가진 브랜드 COMATSU와 중식당 MANDARIN MARKET이 합작한 식당이다. 양 회사의 대표인 마츠무라씨와 야마키타씨는 어린시절 서로 꿈을 응원하던 친구였다. 중학교 졸업 8년 뒤 외식업계에서 재회 중학교 시절 두 대표는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운동이라는 접점으로 가까워졌다. 마츠무라 대표는 농구, 야마키타 오너쉐프는 검도부 소속이었다. 서로 종목은 다르지만 운동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사이가 좋았다. 졸업 후 진로가 나뉘며 멀어지게 됐다. 야마키타 대표는 요리전문 학교에 진학했다. 호텔, 리조트에 취직해 정식 쉐프 절차를 밟았다. 특히 중화요리를 전담했다. 마츠무라 대표는 후쿠오카현 쿠루메에서 바텐더로 일하다 도쿄로 떠났다.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된 건 마츠무라 대표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마츠무라 대표는 외식 기업 ONO 그룹에 입사했다. 오랫동안 떠나있어 인맥이 거의 없던 그는 고향 친구인 야마키타 대표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이미 외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야마키타
교토 쿠라마의 뒷골목가면 작은 유럽식당 ‘Comptoir Coin’이 있다. 이곳은 마루이 유스케 대표 혼자 운영하는 1인가게다. 작은 규모로 10석의 좌석과 오픈키친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문이 들어오면 한쪽에선 프라이팬으로 고기를 굽고 동시에 파스타 면을 삶는다. 단골 고객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삶의 기운이 느껴져 즐겁다고 말한다. 소박하지만 내 가게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며 1인 가게 창업이 늘고있는 추세다. 마루이 대표는 작업을 간소화하는 등 매장 운영에 군더더기를 널어내 효율적인 원 오퍼레이션을 구축했다. 마루이 대표의 1인 가게 운영 전략은 무엇일까? 아르바이트하며 1인 가게 운영 노하우 터득 마루이 대표는 창업 전 프렌치, 이탈리안, 일식 등 다양한 현장에서 외식 경험을 쌓았다. 그 전에는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연관성이 없던 외식업계로 뛰어들게 된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일어나며 지역 농축산 시설이 모두 풍비박산이 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음식이란 무엇일까?’란 고민이 들었다. 인테리어 일을 하며 시모키타자와(下北沢)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요리뿐만 아니
외식업계 이곳저곳에 ‘로봇 열풍’이 불고 있다. 로봇은 지금까지 자동차, 기계, 화학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효율을 높여주는 용도로 활용됐다. 하지만 손님들이 먹는 음식을 만들고 전달해야하는 외식업계에서 ‘로봇의 효율성’은 항상 물음표가 따라오는 주제였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근 1년 사이 외식업계 곳곳에서 ‘로봇’이란 단어를 더 자주 보게 됐다. 로봇 바리스타가 만드는 핸드드립 커피, 음식을 주문하면 알아서 배달하는 로봇, 매장 내에서 서빙을 하는 로봇까지. 빠른 변화를 시도한 매장들과 기업들은 언론과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외식업계에 새로운 트렌드가 찾아왔음을 선포했다. 외식업계에서 푸드테크, 현주소는? 이전까지 외식업계에서의 푸드테크는 효율성의 측면보다는 마케팅 수단으로의 활용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오픈 초기에 로봇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대표로 내세워 손님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형태로는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없었고, 극 초반에 로봇 도입을 시도했던 업체들은 대부분 조용히 방향을 틀거나 폐업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원가 상승 요인이 높아지면서 외식업계에서도 본격적으로 로봇을 인력 대
네덜란드 기업 ‘프리즈랜드 컴피나(Friesland Campina)’의 우유 브랜드 더치레이디(Dutch Lady)는 1924년 베트남 시장에 진출해 오랫동안 베트남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왔다. 시장 점유율은 베트남 자국기업인 비나밀크에 비해 낮으나 철저한 품질 관리로 베트남 주부층의 선호도가 높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베트남 ‘연유커피’에 들어가는 연유가 바로 더치레이디의 제품이다. 비나밀크 강세인 베트남 우유 시장 베트남 우유시장은 2013년 이후로 성장일로를 보이고 있다. 유로모니터 통계 기준 베트남 우유 시장의 2017년 매출은 전년도 대비 9.7% 증가해 19억 762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과 비교해 1.9배 증가한 수치다. 우유 및 유제품은 베트남 포장식품 시장에서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베트남 우유협회에 따르면 베트남 국민의 연간 1인당 평균 우유 소비량은 인접국가인 태국(35ℓ), 싱가포르(45ℓ)에 비해 아직 절반이 안 되는 17ℓ 수준이며, 유제품 주 소비층인 6세 이하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해 향후 성장가능성도 긍정적으로 보여 진다. 글로벌 기업들이 활발히 현지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나, 베트남 국민들은
“내가 오늘 진짜 회사 그만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지만 불안한 현실에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일본 신주쿠에 있는 카레가게 ‘Curry 草枕(쿠사마쿠라)’의 마오하라 사장은 샐러리맨에서 사장님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개업 2년이면 절반 넘게 문을 닫는 냉정한 외식 업계에서 초보 사장님이 살아남은 원동력은 무엇일까? 시작은 대학 시절의 카레 부 마오하라 사장은 일본 간토지방 이바라키현 출신이다.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라 카레라고는 어머니와 급식으로 먹어본 것이 전부였다. 특별히 카레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카레에 빠졌다. 마오하라 사장이 진학한 홋카이도 대학 기숙사에는 식당이 따로 없었다. 기숙사생들이 당번제로 돌아가며 요리를 했다. 향신료를 제대로 갖추고 카레 요리를 하는 친구를 옆에서 보며 배우기 시작했다. “기숙사는 반년마다 방이 바뀌었다. 각 방 마다 ‘기숙사 신문 제작’ 등 컨셉이 있었고 학생이 뜻에 맞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 중 ‘선택한 게 카레부’다. 진심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매일
도교 시부야구 요요기공원 근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빵집 ‘365日’은 가게 이름처럼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2013년 문을 열어 올해로 7년 차를 맞았으며 일본을 넘어 한국, 중국, 유럽 등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번성점으로 성장했다. 짧은 시간에 빵집 ‘365日’을 도쿄의 핫플레이스로 만든 주인공은 '아키마사 스기쿠보' 대표다. ‘365日’라는 가게명에는 매끼 식사가 쌓여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만든다는 스기쿠보 대표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는 빵을 만들 때 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무농약·저농약 국산 재료만을 사용한다. 또한, 빵에 들어가는 베이컨도 직접 만들어 넣는다. 연애 초기 마음으로 빵 대해 365日의 빵은 잡지나 매체에서 관련 특집을 다루면 반드시 게재될 정도로 맛으로 정평이 났다. 사실 스기쿠보 대표가 쉐프로서 빵을 배운 것은 1년밖에 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가게에서 일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의 빵과 과자를 공부했다. 스기쿠보 대표는 소재가 각각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옮길 때 어떤 화학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우선 익혔다.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지 않고 근거 있는 이론을 토대로 그 위에 자신
순대국밥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고기를 먹으며 배를 채울 수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메뉴다. 인천에는 1968년에 개업해 지역을 대표하는 순대국밥집이 한 곳있다. 바로 해늘찹쌀순대(구 이화찹쌀순대)가 그 주인공이다. 1987년 청와대 만찬음식으로 선정될 정도로 맛으론 확실한 인정을 받았다. 초대 창업주는 장동자 여사이다. 지금은 어머니에게서 바톤을 전달 받은 오진호 대표가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고풍스러운 한옥 인테리어와 조경이 어우러진 해늘찹쌀순대 인천 만수본점에서 오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화(二化)에서 해늘로...변화의 시작 오진호 대표가 외식업을 시작한 건 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다. 이전에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숙녀복을 디자인해 전국에 있는 매장에 납품하는 사업을 해왔다. 잘나가던 사업이 IMF 여파로 휘청거리며 사업을 접게 됐다. 당시 해늘찹쌀순대(구 이화찹쌀순대)의 창업주인 어머니가 연로하셔 운영에 힘을 부쳐하던 때라 매장으로 들어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2년 동안은 꼬박 주방과 홀을 오가며 어머니에게 기술을 전수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는 어머니 사업을 이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