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藥之長(백약지장), 백 가지 약 중에 으뜸이라는 뜻으로 술을 좋게 이르는 말이다. 지나치면 독이지만 적정량을 지키면 술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시대가 변화며 음주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 독한 술 한잔으로 동료들과 고된 하루를 잊었다면 지금은 집에서 가볍게 술을 즐기는 쪽을 선호한다.
술을 음미하는 문화가 퍼지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주, 사케, 와인과 같은 발효주이다. 그중 사케는 정미율, 알콜 함량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양조장이 많아 하나씩 알아가며 마시는 재미가 있는 술이다. 강남 도곡동의 슈토, 청담동의 스기타마, 가로수길의 쿄텐 등 번화가에서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케바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급주로 아시아에서 인기인 사케
일본에서 사케는 서양에서 건너온 와인에 밀리며 지방의 작은 양조장들이 연달아 문을 닫던 위기의 시기가 있었다. 사케 생산량 역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2013년 12월 일식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일본은 사케를 일식과 겸하는 술로 홍보하며 수출에 주력해 반등을 노렸다.
일본주조조합중앙회는 사케를 고급주로 포지셔닝해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지아 지역에 진출했다. 수출단가를 높인 덕분에 2014년 상반기 사케의 아시아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선 사케는 ‘일본의 깨끗한 물로 빚은 고급술’이란 이미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지역별 사케 현지화로 시장을 공략한 기업도 있다. ‘마쓰다토쿠비쇼텐’사는 현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술의 특성을 반영해 현지화에 성공했으며, 타깃 국가별로 자사 기존 사케의 맛을 변경하는 전략을 취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사케가 수출 증가 추세를 보이자 자국 술 산업 보호를 위해 2015년 사케 인정 요건 강화에 나섰다. 일본산 쌀과 물을 사용해 일본 내에서 양조한 사케만 ‘Japanese Sake’ 표시를 붙여 판매할 수 있다.
혼술에 제격인 술, 사케
우리나라의 혼밥, 혼술처럼 일본도 1인 소비가 대세다. 이러한 트렌드를 일본에선 집(ウチ)에 충실(充)하다고 해 '우치쥬(ウチ充)'라 부른다. 일본 네오마케팅사의 조사에 의하면 20~50대의 일본인 중 63.1%는 외출보다 '우치쥬'를 선호했다.
우치쥬가 일반화되며 술에 대한 일본 내의 소비패턴도 변화가 생겼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이를 인스타그램 등에 게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부엌을 사케바처럼 꾸미거나 술과 잘 어울리는 소품과 잔을 준비해 마신다.
사케 업계 또한 사회 흐름에 맞춰 도수를 대폭 낮추고 풍미를 더해 와인처럼 음미할 수 있는 술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케 1위로 꼽히는 닷사이는 젊은 여성을 타겟으로 한 전용 글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케 전문가 자격증까지 등장
사케를 제대로 알고 마시기 위해선 알아야 정보들이 무궁무진하다. 술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인 효모 종류만 700종이 넘는다. 사케는 우선 쌀을 어느 정도 깎아 원료로 사용했는지 따라 등급을 나눈다. 정미율이 낮을수록 고급 사케로 다이긴죠(50% 이하)-긴죠(60% 이하)-혼죠조(70% 이하)로 분류한다.
또한, 알콜을 첨가하지 않고 쌀로만 발효시킨 사케에는 준마이(純米)란 명칭이 붙는다. '준마이다이긴죠'라하면 정미율 50% 이하에 쌀과 누룩으로만 제조한 고급 사케이다. 여기에 주조장의 특별한 제조방법으로 제조하는 경우 도쿠베츠(特別)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에 일본에는 사케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Japan Sake Association(이하 JSA)가 있다. 뉴욕, 밀라노, 방콕, 상파울로 등 각국에 지부를 두고 사케 전문 교육 과정을 운영 중이다.
올해 7월 9일~11일, 3일간은 서울지부를 통해 사케 익스퍼트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일본 술을 만드는 법부터 일본 술의 4타입 분류, 맛의 표현 방법, 일본 술과 요리의 페어링, 술잔에 의한 맛의 차이 등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룬다.
이번 교육은 일본 공인을 받은 전문 자격 과정으로 세계에서 통용되는 자격증이 수여된다. JSA 이사장이자 술 저널리스트·에세이스트로 활약하는 '하이시 카오리(葉石 かおり)' 강사가 한국을 찾아 직접 교육 진행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