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가온다. 겨우내 먹던 묵직한 음식과 진한 레드 와인에 서서히 질렸던 사람이라면 주목하시라.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산과 들이 선사하는 갖가지 봄나물들의 맛과 향을 더욱 풍성하게 살려줄 와인 매칭을 다양한 예시로 살펴봤다.
봄나물과 와인의 매칭, 주의점은?
기지개를 켜는 대지가 주는 선물인 봄나물은 싱그러운 맛은 물론이고, 풍성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으로 우리 몸에 활력을 더해준다. 우리 민족이 오랜 옛날부터 다양한 조리법으로 즐겨온 봄나물은 우리 식문화에 깊숙이 자리매김해왔다.
봄나물에 와인을 매칭할 때는 나물 향의 강도, 조리하는 양념의 특성, 조리된 음식의 무게감에 중점을 두고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봄나물들의 대표적인 조리법과 그에 맞는 와인 매칭을 다양한 사례로 준비했다.
취나물 무침과 이탈리아 북부 피노 그리조
취나물 본연의 향과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살짝 데치거나 볶아서 들기름이나 참기름에 무쳐 먹는 것일 테다. 이때 와인 매칭의 핵심은 나물 본연의 향을 해치지 않는 가벼운 보디의 중성적인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들기름이나 참기름의 식미를 깔끔하게 받쳐주는 산도가 있는 와인이면 훌륭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마을 단위 샤블리, 또는 이탈리아의 서늘한 북부지역인 베네치아,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등지에서 널리 재배되는 피노 그리조와 같이 상큼하면서도 중성적인 향, 중간 이하의 보디를 겸비한 와인이 좋은 매칭을 선사할 것이다.
달래간장무침과 알자스 리슬링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 품은 봄 내음과 향이 가장 근접한 나물은 달래가 아닐까. 간장만 무쳐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울 정도로 훌륭한 찬이 된다.
달래 고유의 강렬한 향에 주눅 들지 않으면서도 잘 받쳐줄 수 있는 보디감과 오프 드라이OFF DRY(드라이함을 살짝 벗어난 정도의 당미가 느껴진다는 뜻) 당도를 가진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리슬링이라면 만족스러울 테다. 이와 함께 달래 향에 뒤지지 않고 스파이시한 풍미를 더해줄 알자스 지역의 또 다른 인기 품종인 게뷔르츠트라미너로 만든 와인이라면 기억에 남을 만한 매칭이 될 것이다.
두릅튀김과 브뤼급 샴페인
은은한 향에 ‘겉바속촉’의 식감이 매력적인 두릅튀김은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별미다. 와인과의 마리아주는 튀김의 기름기를 잡아줄 산미와 버블감이 있으면서도, 두릅의 향을 압도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과실 향을 지닌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키포인트다.
가장 드라이한 등급인 브뤼 나뚜르(BRUT NATURE),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 브뤼(BRUT)급 샴페인은 당도가 높지 않으면서도 감탄할 만한 산도를 가졌기에 좋은 매칭을 이룬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에서 전통 방식인 2차 병내 발효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프란치아코르타가 훌륭한 페어링이 될 것이다.
혹시 개인적으로 버블감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서 나오는, 드라이하면서도 높은 산도와 중간 정도의 보디가 돋보이는 슈냉 블랑으로 만든 와인을 추천한다.
쑥버무리와 알자스 피노 그리
풍미가 독특한 쑥은 버무리 또는 떡으로 만들어 먹곤 한다. 음식 자체에 무게감이 있고 향도 만만치 않게 강하기 때문에 와인과의 매칭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조상들은 여기에 꿀이나 조청을 찍어 먹는 창의성과 센스를 발휘했다.
와인 또한 보디감이 있고 과실감이 풍부한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피노 그리가 무난하게 어울린다. 앞서 말한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조와 같은 품종이지만, 보디감과 과실감은 완전히 다른 특성을 지닌다. 독일의 아우스레제급 리슬링도 추천한다. 쑥버무리에 매력적인 산도와 당도를 더해 자꾸만 생각나는 매칭으로 오랫동안 각인될 것이다.
봄미나리전과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아삭한 질감에 신선한 향을 가진 봄미나리로 부친 전은 막걸리와 찰떡궁합으로 알려졌다. 이 조합도 물론 훌륭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산도가 부족해 오래 먹으면 느끼할 수 있고, 막걸리의 묵직한 보디와 높은 당도가 봄미나리의 신선한 향을 압도할 수 있다.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의 소비뇽 블랑, 그리고 같은 품종으로 만드는 프랑스의 상세르 와인은 봄미나리의 향과 아주 잘 어울리고, 전의 느끼함을 잡아줄 산도까지 지녔다. 혹시 소비뇽 블랑 특유의 향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프리미어 크뤼급 샤블리나 캘리포니아, 호주의 모닝턴 반도, 뉴질랜드의 센트럴 오타고 지역에서 나오는 산도 높고 보디감 있는 샤르도네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다양한 봄나물 요리들과 와인 매칭을 살펴봤다. 이런 기본 원칙을 이해하면서 자신만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세상 여러 일들이 그렇듯 경험이 쌓일수록 실수가 줄어들고, 판단력도 올라가며, 또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다. 요즘 우리나라는 겨울, 여름, 환절기 등 세 계절만 남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이 짧은 계절의 창을 활짝 열어 봄나물과 와인이 가져다줄 맛의 향연을 듬뿍 만끽하면 어떨까.
WSA와인아카데미
17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최초의 국제 인증 와인 교육기관이다. WSET 레벨 4 디플로마 자격을 획득한 강사진을 국내 최다로 보유해 수준 높은 와인 교육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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