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인사이트] 한국발 매운맛의 진격

“가장 한국적인 것이 글로벌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푸드 네트워크」,「이터」 등 음식 전문 온라인 매체를 통해 한식 알리기에 열심인 제임스 박은 미국에 거주 중인 한국계 푸드 라이터다.

 

몰랐던 식재료를 알아가는 것이 일상의 재미라는 그는 최근 ‘칠리’를 활용해 한식과 조화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고, 이를 수록한 「칠리 크리스피」라는 책을 발간했다.

 

참기름, 간장, 파기름, 고춧가루 등 한국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여 미국에 이미 판매되고 있는 칠리 크리스피와 차별화를 둔 것이 그만의 킥. 미국 땅에서 현지화한 새로운 ‘K-스파이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제임스 박×호족반’ 컬래버레이션 현장을 찾았다.

 

 

얼마 만의 한국 방문인가.

 

코로나 시기에 한국을 방문했었다. 7년 만의 방문이었다. 3주간 한국에 머무르면서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작년 9월에는 외국인 친구와 함께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하고,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포항 출신으로서 서울은 또 다른 세계였다. 옛것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광장시장, 시끌벅적한 강남의 번화가 등 미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 가득했다. 한국을 떠난 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짧게나마 경험해볼 수 있어서 기뻤다.

 

​10대 시절부터 시작한 해외 생활에서 특히 그리웠던 한국 음식이 있나.

 

알탕, 순대, 족발과 같은 토속적인 한국 요리다. 어린 시절, 명절에 친척 집을 방문하면 어른들이 항상 술자리를 가졌고, 그때마다 빠짐없이 식탁 위에 올라온 메뉴 중 하나가 알탕이었다. 그 맛이 그리워서 미국에서도 여러 한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뉴욕의 한 한식당에서 알탕 메뉴를 발견했다. 한 입 먹자마자 어릴 적 먹던 알탕과 비슷한 맛에 눈물이 고였다. 알탕이라는 메뉴가 뉴욕에 존재하는 것도 놀랍지만, 맛 또한 한국과 비슷해서 더욱 신기했다. 그때부터 ‘뉴욕’이라는 도시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웃음).

 

경영학 전공자가 푸드 라이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경제, 주식 등 경영과 관련된 대학 수업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진로 고민도 많이 했다. 당시에는 「버즈피드」 같은 대형 미디어가 음식 레시피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었고, 나 또한 이 분야에서 뭔가를 시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7년에 미국의 음식 테마 전문 방송국 ‘푸드 네트워크’에 인턴으로 입사하여, 낮에는 푸드 라이터로 일하면서 저녁에는 요리학교에서 요리 공부를 했다.


 

 

칠리 크리스피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2013년부터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홈스테이하며 본격적인 유학 생활을 시작했는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탈출구는 혼자 장을 보고 혼자 집에서 요리하는 것이었다. K-컬처가 아직 유명하지 않던 시기라 한인 마트나 한인 식당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차이나타운에서 ‘라오간마’라는 고추장 양념장을 발견했고, 호기심에 맛보니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하고, 매운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계속 손이 갔다. 김치볶음밥, 달걀프라이 등 평소 자주 만들어 먹는 요리에 라오간마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하여 현재의 칠리 크리스피 요리를 완성하게 됐다.

 

레시피 개발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책에 수록된 레시피는 기본적으로 내가 먹고 싶은 요리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양념장인 라오간마를 사용하는 것이 나름의 콤플렉스였기에 ‘한식에 어울리는 나만의 레시피를 찾아야겠다’는 목적의식이 강했고, 그래서 더욱 레시피 개발에 전념했다.

 

‘매운 레몬 아이스크림’은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대표 메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프트아이스크림에 라오간마를 뿌려 먹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와 어울리는 칠리 크리스피를 새롭게 개발하면 더완벽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이스크림 자체에 칠리 크리스피를 섞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연유와 휘핑크림, 칠리 크리스피, 레몬주스, 바닐라를 섞어 부드러운 질감의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견과류로 고소함을 살린 칠리소스를 부어 이색 디저트를 완성했다.

 

 

책에는 소개하지 않은 본인만의 칠리 크리스피 레시피가 있나.

 

칠리 크리스피는 파, 마늘, 고추를 주요 식재료로 사용하여 감칠맛이 두드러진다. 라면 또한 궁극의 감칠맛을 피로하는 메뉴 중 하나다. 이두 맛을 결합하면 시너지가 일어나며 맛의 정점을 경험할 수 있다. 기본 매운맛 라면뿐만 아니라 짜장라면, 곰탕맛 라면 등 다양한 라면과 조합해 각기 다른 개성을 느낄 수 있다.

 

한국 콘텐츠와 함께 인기 구가 중인 K-스파이시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부트 졸로키아, 아바네로, 카옌페퍼 등 다양한 종류의 고추가 전 세계에 분포하지만, 한국의 고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매콤함이 있다.

알싸함 뒤에 깔끔한 뒷맛이 이어져 매운맛이 길게 지속되지 않고, 치즈, 우유 등의 유제품과도 잘 어울려 다양한 요리에 두루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고추 원물뿐 아니라 분말, 액상 소스 등 매운맛을 내는 다양한 형태의 한국 제품이 미국 시장에 유통되며, 가정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본 한식 레시피를 따라 하는 현지인도 늘었다. 이제 정말로 K-스파이시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미국에 알리고 싶은 한국의 또 다른 매운맛이 있나.

 

초고추장이다. 고추장과 식초를 섞은 양념으로,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은 샐러드 드레싱으로 사용해도 잘 어울린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핫소스를 제공하는데, 초고추장이 현지인의 입맛에 맞도록 개발된다면 핫소스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인 이민자로서 한식과 칠리 크리스피의 매치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칠리 크리스피의 정체성은 고춧가루에 있다. 개인적으로 고춧가루가 고추장보다 한국의 맛을 더 잘 나타내는 식재료라고 생각한다. 고춧가루 그 자체는 텁텁한 맛이 조금 있지만, 파기름, 참기름 같은 오일 베이스의 부재료를 조합하면 더 부드러운 식감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칠리 크리스피는 풍미가 한층 깊어져 김치찌개, 곰탕, 순두부찌개 등 국물 요리와 특히 잘 어울린다.

 

​더 알고 싶은 매운맛이 있나.

 

한식풍의 매운 양념을 적극 활용한 젓갈류를 탐구해보고 싶다. 발효 과정을 거치며 감칠맛이 증폭된 젓갈이 현대의 조리법이나 외국의 향신채와 만나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레스토랑 오너 및 식품회사 종사자와 진행한 다양한 협업 중 기억에 남는 활동은.

 

사골 베이스의 육수와 조리용 기름을 판매하는 식품 기업 하트 앤서울HEART & SEOUL 과 함께한 곰탕 팝업이다.

대표 에들린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 가정식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버려진 뼈를 재활용해 곰탕을 만들었다. 고기의 구수함이 느껴지는 국물에 매콤한 칠리 크리스피를 더하니 부족한 1%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협업이 있나.

 

어젯밤 야식을 즐기며 영화 <극한직업>을 처음 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원 왕갈비 통닭’처럼 칠리 크리스피를 활용한 새로운 치킨 메뉴를 개발해보고 싶다.

 

퓨전 한식 전문점 <호족반>과의 협업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소감은.

 

<호족반>과 칠리 크리스피 사이에는 ‘퓨전’이라는 교집합이 존재한다. 트러플 오일과 특제 소스를 곁들인 ‘트레플 감자전’, 수비드로 조리한 우대 갈비와 갈비덧살을 한 번 더 구워 파채와 함께 즐기는 ‘호족 갈비’ 등 새롭게 발전시킨 한식 메뉴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

 

친숙한 요리라도 조리법이나 사용되는 식재료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신할 수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앞으로도 칠리 크리스피를 다양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도전 욕구가 더 커졌다. 더불어 내년 1월에 오픈하는 <호족반> 뉴욕 지점도 기대하고 있다.

 

향후 계획과 목표는.

 

한국 전통 식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열렬히 희망한다.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식’을 화두로 삼는데, 사찰 음식과 전통 장처럼 한국 고유의 음식을 해외에 소개한다면 어떨지 싶다.

꿈에 대해 방황하는 나를 ‘푸드 라이터’의 길로 인도한 ‘뉴욕’처럼 한식의 새로운 면면을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새로운 식문화를 제안하는 ‘선구자’가 최종 목표다.


  • ​제임스 박(JAMES PARK)

 

「이터」, 「푸드 네트워크」 등 음식 전문 온라인 매체에서 푸드 라이터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지난 8월, 간단한 과자류에서부터 한 끼식사, 사이드 메뉴, 디저트를 아우르는 50가지 칠리 크리스피 레시피를 소개한 쿡북 「칠리 크리스피」를 출간했다. 하트 앤 서울, GFFG 등 국내외 식품회사와 협업해 칠리 크리스피를 활용한 독창적인 레시피를 선보이며 한식의 식문화를 알리고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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