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호와 녹지 관리에 힘써온 슬로베니아는 유럽 중심부의 초록빛 보석이라 불리는 나라다. 미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셰프들은 보편적으로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고 지속 가능성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열린 행사 ‘유러피언 푸드 서밋’의 현장을 소개한다.
우리가 슬로베니아를 방문해야 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목적지다. 슬로베니아는 전 세계에서 매우 친환경적이면서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나라 중 하나로, 환경단체가 선정한 녹색 목적지(Green Destination) 인증을 받은 첫 번째 국가다.
또한 수도 류블랴나는 2016년 ‘유럽 녹색 수도’로 선정된 바 있고 시민 1인당 공공 녹지 면적이 넓은 대표 도시다. 슬로베니아 사람에게 가까운 들과 정원에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은 최근 트렌드가 아니라 오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에서 접하는 음식 대부분이 로컬 푸드이며, 들판의 제철 재료로 요리하는 문화는 보편적이다. 동시에 미쉐린 가이드가 2020년 슬로베니아 편을 발간하기 시작하고 2021년 ‘유럽 미식 지역’ 칭호를 수여하며 슬로베니아를 미식가의 천국으로 인정했다.
지난 11월 초 류블랴나에서 유럽의 주요 미식 행사 중 하나인 유러피언 푸드 서밋(European Food Summit)이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슬로베니아의 대표 요리 축제이자 유럽 미식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일구어 나가는 중요한 플랫폼이다.
푸드 서밋의 공동 주최자인 마르틴 예제르셰크(Martin Jezeršek)는 “유럽에 많은 미식 행사가 열리지만 유럽 전체를 연결하는 자리는 없었다. 우리는 그 간극을 채우고 싶었다”라고 의의를 밝혔다.
처음 참여한 이벤트 ‘고메 류블랴나 크롤’은 요리와 문화, 건축이 결합된 프로그램이다. JRE(세계 15개국의 영 셰프와 레스토랑 경영자 연합) 소속 셰프들이 참여한 가운데 박물관, 미술관 등의 문화 명소를 둘러보는 독특한 미식 행사였다.
젊은 예술가를 위한 오픈 스튜디오이자 갤러리인 ‘도브라 바가’에서는 <갤러리아 오쿠소브>의 마르코 마기네(Marko Magjne) 셰프가, 시청에서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아텔리에>의 요르그 주판(Jorg Zupan) 셰프가 애피타이저를 선보였다. 이 투어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류블랴나 성에서 예르네이 벤데(Jernej Bende) 셰프의 유쾌한 디저트로 마무리됐다.
메인 이벤트인 심포지엄은 ‘일으켜라!’라는 슬로건 아래 류블랴나 성에서 진행되었다. 큐레이터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연결되며 더 영양가 있고 나은 세상을 위해 합심해야 할 때”라고 슬로건의 의미를 설명했다.
심포지엄은 3개 그룹으로 발표가 진행됐다. 먼저 류블랴나대학교 생명공학자 베티 비드마르(Beti Vidmar)는 소의 사료를 변경함으로써 육류 품질은 유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지구 온난화의 해결책으로 식단에서 고기를 없애는 대신 동물의 소화관 속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스페인 <아포니엔테>의 앙헬 레온(Angél León) 셰프는 바다를 미래의 농장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발표했고, 덴마크 <카두>의 니콜라이 뇌레가르드(Nicolai Nørregaard) 셰프는 모든 직원을 포용하고 존중하는 환경을 만든 원칙을 설명했다.
마지막 세션은 영국 작가 존 란체스터가 맡았다. 그는 팬데믹이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사했다고 설명했다. 경험담을 하나 소개했는데, 이제껏 세계를 여행하며 훌륭한 레스토랑을 방문했지만 살면서 맛본 최고의 커피는 격리 해제 후 처음 길거리에서 종이컵으로 마신 커피라고 이야기해 공감을 끌어냈다.
심포지엄은 새롭게 문을 연 추크랄나 갤러리에서 미쉐린 스타 셰프들의 만찬으로 마무리됐다. 요리 재료는 갤러리 공간에 전시되었고, 셰프들이 좋아하는 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예술적인 플레이트로 조합되었다. 잊지 못할 현대 슬로베니아 미식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홍콩의 유명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라디오 및 TV 쇼 진행자. 전 세계를 여행하며 미식 신의 생생한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