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 해발 700m 고지에 위치한 농장에서 긴 테이블이 펼쳐졌다. 그 위로 배추, 버섯, 파, 적채 등 신선한 로컬 재료를 활용한 11개 코스 요리가 연이어 올라왔다. 지난 10월 말, 홍천 무네미 농장과 김봉수 셰프의 협업으로 열린 슬로푸드문화원의 ‘내일의 식탁’ 현장에서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금세 집 앞으로 음식과 식재료가 배달되는 세상이다. 확실히 편리하긴 하지만, 지금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생산됐는지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진다.
이런 가운데 슬로푸드문화원은 소비와 생산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리기 위해 농부, 셰프와 함께 지역의 식재료로 식탁을 차리는 팜 다이닝 프로젝트 ‘내일의 식탁’을 2018년부터 꾸준히 열고 있다.
지난 10월 25일에는 강원 홍천에서 열렸다. 매봉산 기슭, 사시사철 푸른 주목과 소나무로 둘러싸인 ‘무네미 농장’에 식탁이 차려졌다.
이곳은 귀농 8년 차인 문기운, 김숙이 부부가 조경수 사업을 위해 4만여 평의 부지를 정성스레 가꿔온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숙박시설을 함께 운영하며 자연 속 진정한 쉼을 체험하는 관광농원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도착한 손님들에게 주인장은 직접 담근 돌배주를 권했다. 마당의 80년 된 돌배나무에서 딴 열매를 5년 숙성한 귀한 음료였다.
이날 홍천의 가을을 요리한 이는 그릴 레스토랑 <도마>의 총괄 셰프를 거친 김봉수 셰프. 그는 매력적인 로컬 식재료를 발굴하기 위해 재래시장 등에서 지역 생산자들을 만나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그리하여 잡은 메인 식재료는 ‘버섯’. 홍천의 가을 산 곳곳에서 채취한 표고, 새송이, 팽이, 노루궁뎅이 등이 다양하게 활용됐다. 또한 오리, 배추, 무, 파 등 홍천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특징이 드러나면서도 가급적 뼈와 껍질까지 활용하는 제로 웨이스트 쿠킹을 실현했다.
코스를 여는 스타터로 땅콩 바구니에 담긴 한 입 거리들이 등장했다. 오리 껍질을 부각처럼 바삭하게 말린 칩에 감귤, 표고버섯 소스를 올려 감칠맛을 더하고, 닭 간 파테에는 메이플 시럽에 절인 팽이버섯과 텃밭에서 따온 괭이밥을 얹어 입맛을 돋웠다. 애피타이저로는 6개의 스몰 플레이트를 연이어 선보였다.
특히 홍천의 고랭지 채소인 무와 배추를 활용한 요리가 돋보였다. 무는 고조리서에 수록된 ‘동아 누르미’처럼 얇게 저민 후 말려서 냉이 파우더를 묻히고 대파 오일로 포인트를 줬다. 단맛이 높은 홍천 배추는 소금에 절여 튀겨낸 후, 부드러운 아보카도 퓌레와 표고버섯, 꽈리고추 장아찌를 얹어 복합적인 풍미가 어우러지게 했다.
메인은 오리 구이였다. 들깨와 미나리를 넣고 끓여내는 광주의 오리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오리 안심과 다리살 구이에 들깨, 미나리 소스를 끼얹고, 오렌지 제스트에 절인 노루궁뎅이버섯을 가니시로 냈다. 밤, 말린 버섯, 간장 캐러멜 등으로 다양한 텍스처를 구현한 디저트를 끝으로 코스는 마무리됐다.
이후엔 홍천의 천연 밀랍초 공방인 ‘고마워 꿀벌’에서 마련한 밀랍초 만들기 체험이 이어졌다. 강원 청정 지역 양봉 농가에서 공급받은 귀한 밀랍으로 조심스럽게 초를 만들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MINI INTERVIEW 김봉수 셰프
요리에 활용된 로컬 식재료들이 흥미로웠다. 어떻게 정보를 얻었나?
홍천 중앙시장과 재래시장, 한살림 등에서 재료를 구하고 생산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만날수록 오랜 시간을 들여 소중하게 길러낸 식재료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버리는 것 없이 모두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오리의 경우, 구이용으로는 가슴살을 선호하지만, 다리살도 버리지 않고 갈아서 라비올리의 속재료로 활용했고, 뼈도 육수를 내는 데 썼다.
가장 인상 깊었던 홍천의 식재료는?
대파와 배추다. 고랭지 지역이다 보니 대파가 엄청 매웠는데, 열을 가했더니 단맛이 올라왔다. 이걸로 소스나 오일로 만들어 요긴하게 활용했다. 배추 또한 단맛을 품고 있어 그냥 전으로 부쳐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소금에 한 번 절인 후 튀겨냈더니 감칠맛이 더욱 끌어올려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많다. ‘내일의 식탁’ 행사처럼 로컬 농부들과 협업하는 접점을 늘리면서 제로 웨이스트 쿠킹을 실현한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