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된 상상을 먼저 만들어라!

일의 시작을 알리는 회의에서 뻘(?)소리가 난무하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불안 불안하다. 보통 그럴 때는 뚜렷하고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아갈 지향점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타겟으로 삼은 고객이 너무 두루뭉술한 느낌이면 그렇다. 그럴 때는 서로가 먼저 페르소나를 합의해서 만들어야 한다.
페르소나는 본래 라틴어로 ‘연극용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이 점차 인간 개인의 모습(보통은 내면적인 요소보다 겉으로 보이는 요소)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다른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각설하고 마케팅에서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하여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불편사항, 목표, 환경, 욕구 등을 묘사한다. 페르소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사용자를 조사, 분석하고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만들어진다.
엔스파이어는 이번에 맥심 도슨트 런칭에 참여하면서 페르소나 설정에 공을 들였다.
엔스파이어가 맡은 업무의 형태만 보면 ‘웹사이트 기획 및 개발’정도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어떻게 이 제품을 소개하고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고 한다. 맥심이 엔스파이어에게 프로젝트 의뢰를 하러 올 때 이미 제품의 패키지 개발까지 다 마친 상태였다. 이미 출시만 남은 상태로 볼 수도 있었다.

맥심(Maixm)하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르는가? 믹스커피, 선물세트, 인스턴트 커피, 탕비실, 쉬는 시간 등 다양한 단어들이 떠오를 것이다.
동서식품의 맥심은 한국인들에게 옛날부터 사랑받아온 커피 브랜드이다. 옛날에는 집마다 맥심 커피 하나씩은 두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정도로 많이 대중적이기도 하다. 그런 맥심에서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프리미엄 원두커피 런칭을 한 것이다.
맥심과 엔스파이어는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이 있었다고 말했다. “맥심하면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이지 않을까? 맥심이 원두 제품을 선보인다고 하면 그런 선입견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는 고민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맥심을 소비자 관점으로 보면 일리 있는 걱정이다.
맥심이 인스턴트 커피 시장에서 입지가 크다는 건, 반대로 인스턴트 시장 외의 커피 시장에서는 하나의 벽이 될 수 있었다. 엔스파이어는 그렇다고 맥심의 이름을 버리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동서식품에서 맥심이라는 큰 브랜드 자산을 버리고 신규 브랜드로 시작하는 것도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맥심 커피의 과거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을 때, 저희는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회사들에 오랜 시간 원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물량으로 치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전체 원두커피의 40%나 된다니…. 그 압도적인 수치에 놀랐습니다. 그 외에도 50년 동안 커피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죠.”
“문제는 이런 사실들을 ‘어떻게’ 전달할 지였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쏟아내거나, 지나치게 무겁고 진중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았죠. 그렇다고 다른 원두 브랜드처럼 커피의 우수성이나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려고 원산지 사진이나, 제조 공장 사진을 많이 올리는 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또 그런 것들이 브랜드 ‘맥심(Maxim)’이 가지는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엔스파이어는 프로젝트 초기에 팀에서 ‘도슨트(Docent)’라는 컨셉이 언급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어려운 미술 작품들을 쉽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는 직업을 브랜드 페르소나로 잡으면 어떻겠냐는 이유였다.
애초에 맥심이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는 무수히 많은데, 이걸 과시하듯 일방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은 좋지 않으리라 판단. 맥심 측도 엔스파이어가 잡은 컨셉에 동의하며 구체화 작업으로 순탄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간은 한정적이고 체력은 유한하므로 괜한 곳에 힘을 쏟지 않는 것이 협업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뒤로 정말 순탄하게 브랜드 슬로건, 스토리 등이 착착 나오기 시작했죠.”

페르소나 작업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 서치, 구체적인 프로필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번 작업에는 그런 과정이 있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형상화된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지금 커피마다 음악이나 공간이 글로 정리가 되어있듯, 하나하나 어울리는 것들을 쭉 이야기로 써 내려가는 작업을 먼저 하였다고 엔스파이어는 말했다.
엔스파이어는 이 제품과 어울릴 거 같은 사람을 먼저 상상. 그다음 좋아할 것 같은 것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보통의 에이전시들이 페르소나를 설정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을 시도한 것이다. 두 회사는 소비자가 ‘맥심 도슨트’에서 읽어보면 나와 쉽게 대입해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어떤 사람이냐를 표현할 때, 간접적으로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게 더 자연스러운 몰입을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출시되는 제품은 총 8종이었습니다. 저마다 이야기를 잘 갖추어 가기 시작했죠. 커피 원두마다 음미하다 보면 떠오르는 느낌들이 각기 있거든요. 맥심 측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이 커피는 이런 음악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나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은 이런 제품이랑 어울릴 거야.’ 같은 상상을 하며 즐겁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제품이나 브랜드가 어울리는 스토리를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배가 되는 게 느껴집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소비자가 구매할 것에 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는 것. 그게 브랜드 개발에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맥심 도슨트의 특징 중에 커피 파인더도 브랜드 페르소나를 어필하기 위한 장치이다.
제품이 판매되는 주력 채널은 온라인과 대형마트이다 보니 8종의 매력을 각각 어필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그만큼 선택의 어려움을 최소화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 몇 가지 선택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맞는 커피를 추천하는 것. 도슨트의 컨셉에 맞춘 장치인 것이다. 취향을 베이스로 질의응답을 설계.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간단하게 취향 저격 당할 만한 커피를 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담겨있는 결과물인 것이다.

자신의 브랜드 페르소나, 내가 목표로 하는 고객의 페르소나를 설정할 때 좋은 점. 엔스파이어는 여러 장점이 있겠지만, 페르소나가 잘 잡히면 일 전체에서 구체적인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회의가 구체적이고 효율적으로 되는 것도 있다고 했다.
만약 페르소나 없이 각자가 인물을 상상하면 보통 불특정 다수의 군상을 떠올린다. 그것을 라이프 스타일을 그려보거나, 프로필을 작성해보면서 한 사람으로 대상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위 말하는 뻘(?)소리가 적어지고 일 진행이 수월해진다. 사전에 페르소나를 설정하고 진행하게 되면 일단 합의된 상상을 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공을 들인 ‘맥심 도슨트’는 전국 이마트 내 매출 데이터만 보아도 매우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맥심 내부에서 초기에 설정한 목표 매출량을 훨씬 웃도는 결과를 달성하였다. 비즈니스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 같이 참여했던 엔스파이어도 덩달아 뿌듯하다고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