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상한 공유 경제는 사회 곳곳을 바꾸고 있다. 자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사용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는 공유 경제 개념을 바탕으로, 에어비앤비와 우버 등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외식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갈래의 사업을 탄생시키고 있다.
레스토랑 컨설팅 그룹 바움앤화이트맨은 공유주방 사업을 “레스토랑을 위한 위워크(WEWORK, 뉴욕에서 시작된 대표적 코워킹 스페이스)”라 표현하며, 배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작은 주방 공간을 임대하거나, 수준 높은 레스토랑을 짓지 않고도 신선한 콘셉트의 외식업을 시도하도록 돕는 사업이라고 정의했다.

미국에서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유주방 스타트업'과 '액셀러레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유주방은 처음에는 사용료를 내면 주방 공간과 조리 도구를 빌려 쓸 수 있는 형태였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식품을 개발할 공간을 마련하기는 부담스러웠던 예비 창업자에게 안성맞춤인 서비스였던 것.
이들의 니즈를 충족시킴으로써 공유주방의 고객이 점차 늘어났고, 관련 서비스 영역이 확장됐다.
2012년 미국 워싱턴에 첫 공유주방을 오픈한 유니온 키친(UNION KITCHEN)은 사업의 선두주자로, 주방을 공유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식품 유통과 예비 창업자 인큐베이팅 사업까지 나아갔다.

정부와 협력하고 관련 규제를 풀어 사업을 합법화하기 위한 노력에도 총력을 기울인 것. 레스토랑 전문 컨설팅 기업 앤드루 프리먼&컴퍼니는 공유주방이 관련 법규를 바꾸고 외식업 생태계를 바꾸는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예측했다.
이들에 따르면 고스트 키친은 확산하고 있으며, 배달 외식의 매출은 오프라인 매출보다 2-3배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발 빠른 외식 기업들은 이미 이 트렌드에 합류했다.
미국의 인기 프라이드치킨 프랜차이즈 칙필레(CHICK-FIL-A)는 오프라인 업장을 늘리는 속도를 차츰 늦추면서, 고스트 키친을 오픈해 배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올랜도를 기반으로 7백 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 중인 캐주얼 해산물 프랜차이즈 레드 랍스터(RED LOBSTER)는 올해 1월, 사람들이 음식을 배달해 집에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트렌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본다”며 “이른 시일 내 고스트 키친의 프로토타입을 오픈할 예정으로, 다이닝룸을 아예 갖추지 않고 오직 배달에만 집중하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스 요리 전문 프랜차이즈 수블라(SOUVLA)는 지난해 9월 다섯 번째 매장 수블라 소마를 배달만 제공하는 가상 레스토랑으로 오픈했다.
첫 번째 매장이 문을 연 시기에는 배달이 중요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배달에서 매출의 30% 이상을 올리는 게 그 배경. 수블라 소마는 다른 지점의 메뉴를 기본적으로 제공하면서, 이 지점만의 새로운 메뉴와 대형 단체 고객을 위한 케이터링도 주요하게 다룰 계획이다.
이처럼 외식 업계에서 공유주방과 배달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레스토랑의 의미와 정의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논의가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메뉴 리서치 기관 데이터센셜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확산하는 고스트 키친과 공유주방에 주목하며, 배달 앱 안에서만 존재하면서 특정 시간에만 오픈했다가 사라지는 음식점을 사례로 꼽았다.
지난해 11월 뉴욕에 등장한 샐러드 볼 자판기도 대표적 사례다.
이 자판기는 파머스 프리지(FARMER’S FRIDGE)라는 스타트업이 운영하는 것으로, 뉴욕시 보건당국이 이 자판기를 어떤 기준으로 허가하고 조사할지 업계 관련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파머스 프리지는 자발적으로 자판기를 철수한 후 뉴욕시와 협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뉴욕시 당국은 곧 이 자판기를 레스토랑 혹은 푸드 서비스 업체로 정의하고 다른 식음 업장과 같은 수준으로 검사, 관리, 감독하기로 했다.

한편 기존 환경과 미래 트렌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채택하는 레스토랑도 늘고 있다.
오프라인 레스토랑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테이크아웃 시스템을 도입하고, 고스트 키친을 설립해 배달과 밀키트 사업까지 확장하는 업체가 생겨나고 있는 것.
이 모델을 선택하는 업체들은 외식을 즐기는 사람과 집에서 먹는 요리를 선호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글로벌 기업 '스타벅스' 역시 이 목적에 맞추어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18년부터 배달 서비스를 중국에서 꾸준히 늘려오다 최근 1천여 개 매장으로 확대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알리바바와 파트너십을 맺고 고스트 키친을 론칭했다.
알리바바가 보유한 헤마 슈퍼마켓(HEMA SUPERMARKET) 내부에 주방을 두고 배달 서비스만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서는 심플프로젝트컴퍼니가 2015년 공유주방 모델 '위쿡'을 선보인 것이 최초다. 위쿡을 시작으로 국내 공유주방 시장도 급격하게 성장하는 추세다.
위쿡 역시 미국의 사례 ‘유니온 키친’처럼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사업을 합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지난해 7월 규제 샌드박스 시범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한 주방에 복수의 사업자가 영업을 신고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공유주방에서 만든 제품을 B2B로 유통하는 것도 가능해지면서 시장의 변화가 예상된다.

우버 설립자 트래비스 캘러닉은 우버의 이사직에서 사임한 후 클라우드키친이라는 공유주방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클라우드키친이 자체 브랜드로 최초 진출한 시장이 바로 한국이다.
지난해 5월 서초에 한국 1호점을 오픈한 클라우드키친은 현재 국내에 7개 지점으로 영역을 넓혔다.
인구밀집도가 높을뿐더러, 2019년 배달 앱 시장 거래 규모가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한 20조원 규모로 추산될 만큼 배달 문화가 이미 발달했다는 점이 진출 배경으로 꼽힌다.
공유주방이 확산하면서 치킨, 피자 일색이었던 배달 메뉴 역시 동남아 요리부터 삼겹살, 커피와 디저트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더불어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유했으나 자본이 적은 개인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개발될 전망.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오프라인 소비에서 온라인 소비로 변화하면서 급격하게 성장 중인 공유주방 사업이 외식업에 어떤 바람을 불러올지 주목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