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평지에 초록 잎이 넘실대는 제주의 차밭은 어쩐지 바다를 닮았다. 멀리 동쪽에는 파란 바다가, 서쪽에는 한라산이 자리 잡고 있어 더욱 각별한 풍경. 서귀포 중산간의 수망다원은 본래 더덕이나 도라지를 심던 땅을 개간한 곳이다.
그곳에서 제주 토종 감으로 염색한 옷을 입고 나타난 강경민 대표를 만났다. “저한테는 이곳의 돌 하나하나가 귀해요.” 다원을 둘러싼 돌담을 가리키는 그에게 이야기를 청했다.
어떻게 차 농사에 뛰어들게 되었나?
대학 시절, 일본 유학 중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현지 문화 탐방에 참여했다. 그때 다도를 접하며 처음 차 맛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까지 차에 열중할까?’ 궁금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차가 계속 생각나더라. 그래서 전남 보성이나 ‘오설록’ 등 차 산지를 다니며 조사했다.
하필 그때가 제주 감귤이 몇 년간 폭락하던 시기라 2003년 제주도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차 사업을 육성했다. 그렇게 땅을 알아보다 이곳을 매입했고 2006년에 황무지를 개간한 뒤, 2007년과 2008년에 나무를 식재해 밭을 만들었다.
차 농사의 매력은 무엇인가?
밭을 한번 보라. 푸르고 아름다우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바라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밀감 농사도 짓고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차 농사는 훨씬 단순하다. 1년에 서너 번 수확하고, 말려두면 3년 동안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곳을 밭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차나무는 밀감 농사가 안 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춥고 바람이 많이 불고 비도 많이 내리는 곳 말이다. 이곳 중산간은 원래 더덕이나 도라지를 심는 밭이었다.
녹차밭의 한 해는 어떻게 흘러가나?
수확을 모두 마친 10월 말부터는 가지치기 작업을 한다. 이후 비료를 뿌리면 곧 겨울 수면에 들어간다. 2월 중순쯤 봄 비료를 주고, 초봄부터 세전 수확을 한다. 제주도는 타 지역보다 수확 시기가 빨라 4월 말이면 수확을 시작한 것이다. 이때 거두는 초봄의 어린 순을 가장 좋은 차로 친다.
재배 중인 차나무의 품종은 어떠한가?
조생종 둘, 중생종 하나, 만생종 하나, 총 네 가지 품종이 있다. 1년에 세 번 수확하는데 수확량은 건엽 기준 15-20t 정도다.
올해 작황은 어땠나?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몇 해 전부터 이상기후로 난데없이 서리가 내려 피해를 보기도 했다. 다행히 작년 말에 서리를 예방하는 바람개비 모양의 방상 팬을 설치했다. 서리가 내리면 자동으로 작동해 바람을 일으킨다. 그 덕분에 올해는 피해가 없었다.
차밭뿐 아니라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카페는 얼마 전 10월에 오픈했다. 내부에 체험 공간도 조성했는데 다도 체험을 비롯해 요가, 명상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찻잎을 덖어보는 차 문화 체험 교육도 준비 중이다.
아직 차 문화를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대형마트를 봐도 대용차가 대부분이고, 티백도 제대로 우릴 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 아쉽다.
그렇다면 차는 어떻게 우려내야 하나?
보통 끓는 물을 바로 붓는데, 녹차는 60-70℃에서 우리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티백 녹차에서도 감칠맛이 난다. 또 수돗물보다는 생수가 좋고, 제주 삼다수를 최고로 친다. 생수를 끓인 뒤 식혀서 사용하면 된다. 다구 중 물식힘그릇(숙우)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망다원에서는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있나?
현재 잎차와 삼각 티백, 말차 제품을 생산 중이다. 모두 초봄에 수확한 잎으로 만든다. 앞으로는 말차를 특화할 계획이다. 말차는 고운 가루로 된 녹차를 가리키는데, ‘말抹’이란 미세하게 분쇄해 가루로 만든다는 의미다. 한국에 말차 생산 설비가 많지 않은데 일본의 최신 말차 설비 라인을 구축하여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
차를 생산하며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
해외 박람회에 참여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중국, 터키 등의 식품 박람회에서 한국 말차가 호평을 받았다. 해외에서 우리 제품에 관심을 보이며 높게 평가하니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차 생산에 집중하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차 문화가 확산되어 다 함께 즐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해외를 보면 차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는데 정작 한국은 우리 땅에서 나는 차에 대한 인식이 낮다. 어릴 때부터 차를 가까이하며 소통의 매개체로 삼고, 동시에 차를 담는 그릇인 도예도 발전하여 예술을 아끼는 분위기가 정착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