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의 마지막인 소한과 대한에 만나는 미식의 테마는 ‘저장 음식’이다.
한 겨울에도 사계절의 맛과 영양을 고루 섭취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들여다보고, 이를 각자의 레시피에 활용한 셰프들의 요리도 살펴본다.
당귀잎장아찌(Leaf Jangajji)
장아찌는 제철 채소류를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 속에 넣어 오랜 시간을 두고 삭혀 먹는 저장 음식의 진수다.
저장하는 동안 장의 맛과 염분이 재료에 고루 스며들고, 미생물의 발효 작용으로 독특한 맛과 질감을 낸다. 날로 먹는 채소라면 대부분 장아찌로 만들 수 있지만 수분이 많고 섬유소가 적은 것은 마땅치 않다.
그래서 깻잎, 고춧잎, 머위잎 등 잎채소류가 장아찌의 재료로 많이 활용된다. 특히 당귀잎처럼 개성이 강한 재료는 생으로 쓰는 것보다 장아찌로 담가야 맛과 향이 부드러워져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당귀잎의 톡 쏘는 향이 간장에 중화되면서 은은한 약초 향으로 바뀌며, 적절하게 쓴맛이 입맛을 돋운다. 특히 고기와 곁들이면 궁합이 좋다.
의령 메추리
by 사녹
닭보다 작지만 쫄깃한 식감이 매력인 메추리. 경남 의령군에서 생산되는 왕메추리를 삼계탕처럼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셰프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메뉴다.
닭 속을 찹쌀로 채우듯, 메추리 속을 부드러운 찹쌀 리소토로 채운 뒤 통째로 노릇하게 구웠다. 여기에 백김치 국물로 산미를 맞춘 베샤멜과 당귀잎 장아찌를 곁들였다.
이 요리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찹쌀과 함께 썬 메추리 고기를 당귀잎 장아찌에 싸 먹는 것이라고. 당귀잎 장아찌의 은은한 약초 향과 적당한 산미가 부드러운 메추리 고기와 어우러져 마치 한방 삼계탕을 먹는 듯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 사녹
-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70길 36 2층
산초장아찌(Fruit Jangajji)
열매 채소를 장아찌로 담그면 뭐니 뭐니 해도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소금물에 삭힌 풋고추를 간장에 절여 만든 고추장아찌, 설탕에 절인 매실을 고추장에 박아 숙성시킨 매실장아찌 등 이 대표적인 예.
그중에서도 장아찌로 담갔을 때 식감이 독특해지는 열매가 있다. 바로 산초. 산초는 초피라고도 부르며 상쾌하고 톡 쏘는 매운맛을 지녀 비린내를 없애는 양념으로 주로 쓰인다. 여름철 수확한 산초 열매를 1백 일간 말린 후, 소금으로 씻어낸 뒤 간장과 식초, 효소를 넣어 6개월간 숙성시키면 장아찌 완성. 산초장아찌는 비린 맛을 잡아줘 특히 생선회와 잘 어울린다.
청국장 어회
by 두레유
회와 산초장아찌의 페어링을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요리. 철갑상어의 등살 부분을 숙성시킨 회 위에 오독오독한 식감이 이색적인 철갑상어 척수를 얹고, 그 위에 서리태로 만든 청국장, 부추와 들기름을 섞은 오일, 산초장아찌 열매와 소스, 산초 가루, 말돈 소금 등을 올렸다.
물컹거리는 식감을 지닌 철갑상어회가 구수한 풍미를 살린 청국장 소스와 녹진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산초장아찌의 매운맛이 톡 쏘면서 입안을 정돈해준다. 매년 여름 강원도 홍천에서 따온 산초 열매로 직접 담그는 장아찌는 간장에 산초 향이 깊게 밸 때까지 오래 숙성시켜 각종 회 요리에 약방의 감초처럼 활용하고 있다.
- 두레유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65
양하·연근장아찌 & 시금치장
과거에는 일 년 내내 두고 먹을 수 있는 저장의 목적으로 장아찌를 담갔다면, 요즘은 염도를 낮추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별미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장아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레시피를 선보이는 곳도 늘고 있다.
채소 전문 다이닝 <베이스 이즈 나이스>에서는 익숙한 연근 장아찌라도 아삭함이 살아 있고 약간의 산미가 생길 정도로만 짧게 숙성시켜 요리에 활용하거나, 양하와 같은 낯선 채소를 장아찌로 담그기도 한다. 제주의 특산물인 양하는 생강과 셀러리를 섞은 듯한 독특한 향과 쫄깃한 식감을 가진 채소. 이 밖에 시금치에 된장, 아몬드를 섞어 3일간 숙성시켜 페스토처럼 활용하는 시금치장도 이곳만의 독특한 장아찌다.
삼색 장아찌 채소밥
by 베이스 이즈 나이스
밥 위에 서로 다른 색감과 식감을 지닌 세 가지 장아찌가 꽃처럼 피어났다. 알이 굵고 찰진 우리쌀 품종 신동진을 포함해 유기농 찹쌀, 약용 귤피, 블랙 렌틸콩, 발효 귀리 등 다섯 가지 곡물을 섞은 밥을 납작하게 누른 뒤, 시금치장과 양하장아찌, 연근장아찌를 올린 요리다.
시금치의 푸른색과 싱그러운 향이 살아 있는 시금치장은 비빔밥 속 고추장처럼 부드러운 양념 역할을 하며, 연근장아찌는 토치로 살짝 구워 불 향을 입히고 아삭거리는 식감을 극대화했다.
고운 보랏빛을 살리기 위해 간장 대신 식초와 소금으로 절인 양하장아찌는 아릿하면서도 시큼한 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채소만으로도 이렇게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에 새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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