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날카롭게 떨어지는 마티니보다 섹시하고, 붉은 빛의 네그로니보다 농밀한 매력을 지닌, 오직 로컬 재료로만 만든 K-ocktail. 지금 다섯 곳의 바에서 맛볼 수 있다.
새하얀 쌀밥이나 솥에 눌어 붙은 누룽지의 고소함, 고기 쌈에 빠지면 서운한 깻잎, 화사한 향으로 감각을 깨워주는 방아 잎이나 당귀, 쑥의 쌉쌀한 풍미. 제철 맞은 국민 과일 사과와 배의 달큼함.
익숙할 대로 익숙하거나, 잊고 살았거나, 혹은 아직 잘 모르는 우리의 맛과 향을 바텐더들이 한 잔의 칵테일로 담아냈다.
칵테일로 떠나는 한국 여행
바 참
경기도 여주, 전남 담양, 경남 함양에서 제주도까지 단 하룻밤에 여행할 수 있는 곳, 서촌의 한옥 바 <참>이다. 준비물은 칵테일을 즐길 몸과 마음이면 충분하다.
고소리술과 혼디주, 둥굴레 등으로 귤의 시트러스함과 한국적인 고소함을 담은 ‘제주’, 대잎술과 매실원주로 숲의 맛과 향을 표현한 ‘담양’ 등 임병진 바텐더는 한국의 지역색을 표현한 칵테일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 술의 주원료인 쌀은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루기에 다소 어렵지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재료를 찾는 재미에 빠졌다고. 그 과정에서 보통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들끼리 궁합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음료 전문가 비크롭 씨가 ‘테루아가 같으면 공통적인 향을 지닐 때가 많다’는 말을 했어요. 그렇다면 술과 그 술이 빚어지는 지역 특산물 사이에도 연결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거죠.”
술은 칵테일에 힘을 실어줄 증류주와 단맛을 채워주고 누룩 향으로 사이드킥 역할을 하는 발효주 등 보통 두 가지 이상을 사용한다.
이번에 선보인 ‘예산’은 명품 사과의 도시인 만큼 묵직한 맛의 사과 증류주 추사 40, 보다 발랄한 느낌의 국내산 애플 사이더, 여기에 누룩 향과 우리나라산의 아로마를 담고 있는 능이주, 한국형 스파이스 역할을 해줄 쑥 고膏, 용담, 도라지를 섞어 만든 시럽을 더했다.
재료에서 연상되듯 빛깔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아 두유를 사용해 워싱(WASHING) 작업을 거쳤다. 산이 단백질을 응고 분리시키는 과정에서 고체 입자들이 함께 결합하기 때문에 이를 걸러내면 맑은 빛깔로 뽑을 수 있다.
이대로 마셔도 좋지만 임병진 바텐더는 스로잉(셰이커에서 다른 셰이커로 배합물을 옮기는 방식)을 거쳐 유분의 크리미함을 제거하고 보디감도 낮췄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발효 향이 오렌지 와인이나 베르무트를 연상시켰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전통을 지켜나가는 분들이 있다면, 저의 역할은 그 술을 맛있고 멋있게 선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도자기 잔을 쓰거나, 둥굴레나 쑥 고처럼 한국적인 맛과 향을 품은 재료를 찾아 접목하는 이유죠. 사실 한국의 바텐더로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기도 해요.”
- 예산
예산의 특산물인 사과를 각각 증류하고 발효한 추사와 사이더에 우리나라 산의 아로마를 담은 능이주, 여기에 쑥 고와 용담, 도라지 등으로 산의 스파이스까지 담았다. 워싱과 스로잉을 통해 보다 라이트하게 완성했지만 복합적인 맛의 매력은 잃지 않았다.
- 추사Ⅰ예산 사과를 증류한 후 오크통에서 숙성했다. 사과의 은은항 풍미와 바닐라 향, 초콜릿 향의 여운이 길게 느껴지며, 높은 도수에도 목 넘김이 부드럽다.
- 쑥 고Ⅰ쌀의 풍미와 어울리는 재료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는 임병진 바텐더가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재료. 쑥을 곁들여 만든 일종의 쌀 시럽이다. 쑥의 쌉싸름한 맛이 칵테일에 한국적인 매력을 더해준다.
- 용담Ⅰ보통 약재로 쓰인다. 한국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파이스를 표현하기 위해 시럽의 재료로 사용했다.
- 도라지Ⅰ역시 한국적인 스파이스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 쑥 고, 용담과 함께 시럽으로 만든다.
- BAR CHAM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34
- T 02-6402-4750 / H 19:00-03:00
스토리텔러의 칵테일
더 드로잉 룸
<더 드로잉 룸>에는 ‘서울 브리즈(SEOUL BREEZE)’라는 메뉴가 있다. 사과 증류주인 문경바람과 레몬, 토닉워터를 섞은 아주 간결한 칵테일이다.
김진환 바텐더는 손님에게 술 설명과 함께 ‘문경바람이라는 술이 서울에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단어의 중의적 의미를 농담처럼 건넨다. 외국인 손님들이 특히 즐거워한다.
그 밖에 영화 노팅힐에 등장하는 과일을 엮어 만든 칵테일, 베토벤이 작곡비를 와인으로 대신 받기도 했다는 일화와 매일 새벽 5시 원두 60알을 세어 커피를 내려 마셨던 습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더 마에스트로’까지 ‘듣는 재미’가 있는 칵테일이 준비되어 있다.
“맛은 기본이고 바텐더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들려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몰라서 찾지 않던 것들을 흥미롭게 마실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스토리텔러이자 바텐더로 선택한 술은 ‘토끼’다. 양조 기술자 브랜힐이 ‘뉴욕’에서 론칭한 증류 소주로 기사의 주제와는 동떨어졌다. “이 술을 처음 접한 건 대만이었어요. 속이 엄청 쓰렸죠. 간결하고 입에 붙는 이름, 세련된 레이블, 독특한 맛과 향까지 우리가 못했던 것을 외국인이 만들었다는 게, 대만의 작은 바에서도 이 술을 알고 있다는 게 말이에요. 그런데 이 술, 곧 한국 충주에서 만들어집니다.”
그에게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토끼 소주의 원료인 찹쌀을 구하기 적합한 충주에 양조장을 설립하고 ‘지역 특산주’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더 드로잉 룸>의 ‘코리안 헤리티지 술(KOREAN HERITAGE SOOL)’ 리스트에 오를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토끼 소주는 플로럴한 아로마가 특징이지만 그 안에 옅은 흙 향도 간직하고 있다.
김진환 바텐더는 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땅속에서 자라는 재료를 고민하던 중 제주에서 맛봤던 구좌 당근의 달큼한 맛이 떠올랐다. 게다가 ‘토끼와 당근’이라는 이미지와도 부합하니 일석이조. 나머지 재료는 검증된 조합인 완제품 주스의 백 레이블을 힌트 삼아 사과, 생강을 착즙하고 샐러드처럼 요거트를 더해 스로잉했다.
투명한 이중 유리잔에 담고 계피 가루까지 뿌리니 화분을 닮은 한 잔이 완성됐다. 여기에 바텐더가 들려줄 한국 술 이야기가 맛있는 가니시가 되어줄 것이다.
- 酒土피아
‘토끼는 당근’이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재료 조합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한 잔. 토끼 소주에 숨어 있는 흙 향을 부각하기 위해 땅속 뿌리 채소인 당근과 단맛을 보강해줄 사과, 산미를 위한 요거트를 배합해 크리미하게 완성했다. 생강과 계피 가루의 스파이스한 킥이 마지막 한 모금까지 질리지 않게 마실 수 있도록 도와준다.
- 토끼Ⅰ미국의 양조 기술자 브랜 힐이 여행 중 한국 술의 매력에 반해 2년간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술만드는 법을 배우고 뉴욕에서 론칭한 소주. 한국 충주에 양조장 설립을 앞두고 있다. 찰기 있는 쌀을 원료로 빚는데, 마치 그라파 같은 플로럴한 아로마가 특징이다.
- 당근Ⅰ토끼 소주의 흙 향과 매칭하기 위해 선택한 땅속의 재료. ‘토끼는 당근’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 사과Ⅰ칵테일의 당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가을이 제철인 사과를 사용한다. 당근과 사과는 시제품 주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검증된 조합이다.
- 생강Ⅰ크리미한 칵테일에 스파이스한 킥을 더하기 위한 재료. 토끼 소주의 흙 향과도 잘 어우러진다.
- 더 드로잉 룸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30
- T 02-6959-4500 / H 11:00-01:00, 일요일 11:00-24:00
전통, 새 옷을 입다
장생건강원
서양의 바 문화를 어디까지 한국화해볼 수 있을까? 전통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정현 바텐더는 그 답을 재래시장에서부터 찾기로 했다.
마침 논현동 영동시장에 노부부가 20여 년간 운영해온 한약방 <장생건강원>이 다음 주인을 찾고 있었고, 그들의 지난 세월을 조금이나마 치하하고자 그 이름 그대로 바를 오픈했다.
또 상호에 걸맞게 약초나 과실로 직접 만든 담금주, 두레앙, 감홍로, 담솔 등 특성이 겹치지 않는 한국 술로 백 바 한편을 채웠다.
시장 상인들과 어우러지기 위해 매달 특별한 컬래버레이션 칵테일도 선보인다.
<영동죽집>의 호박죽, <삼성축산>의 고기를 베이컨 칩으로 만들어 칵테일에 활용했고, 의류 매장과 협업한 ‘옷을 입은’ 칵테일도 준비 중이다.
이후 모든 컬래버레이션 칵테일은 한국 술을 사용할 예정이다. “전통을 있는 그대로 내세우기보다는 시각적, 미각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요. 예를 들어 한국 술이 지닌 누룩 향도 감추지 않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텐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조합의 답은 보통 한국 로컬 재료나 쌀밥과 잘 어울리는 재료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서정현 바텐더. 된장, 간장 소스, 깻잎 비터, 도라지나 인삼으로 만든 토닉워터, 청양고추 퓌레 등 그간 한국 바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재료들이 잔 안에 담긴다.
이번에 새롭게 만든 칵테일은 한국 술의 주 원료인 ‘흰쌀’의 풍미를 비롯해 다양한 한국적인 고소함을 표현하고 ‘100美(백미)’라 이름 지었다. 문배술을 베이스로 쌀 음료, 누룽지 사탕을 넣고 끓인 토종 벌꿀, 깻잎 비터를 배합하고 달걀흰자를 넣은 후 셰이킹해 모든 재료가 둥글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가니시로는 누룽지와 인절미 가루를 곁들였다.
곡물의 고소함이 화사한 문배 향을 등에 업고 고개를 내밀었다. 한국 사람들은 익숙한 맛과 향의 새로운 모습을, 외국인에게는 독특한 한국의 맛과 멋을 알릴 수 있는 한 잔. 4년 전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50여 년의 세월을 그 안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영동시장의 모습과 어쩐지 닮은 듯했다.
- 100美
한국 술의 주 원료인 흰 쌀이라는 의미와 ‘1백 가지 아름다움이 있는 로컬’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문배술에 쌀 음료, 누룽지 사탕을 넣고 끓인 토종 벌꿀, 깻잎 비터, 달걀 흰자를 배합한 크리미한 칵테일. 화사한 문배 향과 고소한 곡물 향이 조화롭다. 가니시로 곁들인 누룽지는 안주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 문배술Ⅰ평양 지역의 전통 증류식 소주. 메조, 찰수수 등으로 빚은 순곡 증류주임에도 우리나라 토종배인 문배 향이 난다하여 이름 붙었다. 화사한 향과 깔끔한 뒷맛이 특징이다.
- 쌀 음료Ⅰ흰쌀을 주 원료로 사용하는 한국 술의 특징을 부각하는 동시에 쌀의 향과 맛이 옅게 배어 있어 문배술의 화사한 향을 덮지 않는다.
- 인절미 가루Ⅰ흰쌀과는 다른 매력의 고소함이 매력인 인절미 가루.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고소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 누룽지 꿀Ⅰ‘고소한 단맛’을 위해 누룽지 사탕을 으깨 토종꿀에 넣어 끓였다.
- 깻잎Ⅰ주로 쌈채소로 먹지만 허브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깻잎으로 직접 비터를 만들고 채 썰어 칵테일의 가니시로도 사용했다.
한국의 식탁을 담은 칵테일
장프리고
새로운 식재료, 그중에서도 독특한 향을 지닌 것들을 만나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는 정성영 바텐더. 이번 여름에는 보양식의 대명사인 장어구이 집을 찾았다가 ‘당귀’의 향에 매료됐다.
“셀러리와 닮은 듯 은은한 약재 향도 묻어났어요. 보통 셀러리 가니시를 사용하는 ‘블러디 메리’가 ‘해장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듯 당귀를 활용한 ‘원기회복’용 칵테일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나머지 재료 선택에 대한 힌트도 테이블 위에 있었다. 당귀 잎에 장어 한 점과 생강을 올려 쌈을 싸 먹고 곁들이는 복분자주 한 잔. 단순하지만 명백한 이 페어링이 칵테일 ‘가든’으로 탄생한 것이다. 쌀과 누룩, 계피, 꿀, 그리고 생강으로 만들어진 이강주가 베이스 술로 당첨됐다.
최근 저도주를 원하는 손님들이 늘어남에 따라 비교적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선택한 것. 여기에 당귀 잎,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사과 식초와 매실 원액, 잘게 부순 얼음과 소다수를 넣은 후 마지막에 복분자 식초를 털어뜨린다. 당귀 잎의 향이 워낙 강해 셰이킹 대신 스위즐(스터로 저어 만드는 방식)로 은은한 향을 발현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가볍고 단출함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자 영어 단어의 의미와도 잘 어울리는 ‘가든’ 칵테일의 겉모양새. 마치 모히토 같기도 했다.
“당귀 향이 굉장히 한국적인 동시에, 어쩌면 한국 사람들에게도 낯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쉽고 간편한 방식, 친숙한 비주얼을 유도했어요.”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한국 술 칵테일의 카테고리를 넓혀보고 싶다는 포부도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 술의 저변이 확대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숙하고 호불호도 강해요. 익숙하지 않은 맛을 익숙한 방식으로 ‘잘 만든’ 레시피가 있다면 언젠가는 보드카나 럼 베이스의 칵테일처럼 보편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일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새콤달콤한 맛에 이색적인 향을 담은 청량한 칵테일. 배부를 때 입가심으로도, 탄산 음료 대신 식사에 곁들여도 좋을 법한 한 잔은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볼 만하다. 이때 정성영 바텐더의 추천 페어링 음식은 역시 장어구이. 식재료 자체에 기름짐과 담백함을 모두 가진 음식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 가든
커다란 하이볼 글라스에 당귀 잎 한줌과 이강주 30ml, 사과 식초 5ml, 매실 원액 20ml, 잘게 부순 얼음을 가득 넣는다. 얼음과 당귀 잎이 부딪혀 은은한 향만 나도록 저어준 후 소다수를 넣고 복분자 식초를 부어 마무리한다. 새콤달콤하고 청량한 칵테일로 식후주나 기름진 음식과 매칭해 즐기면 좋다.
- 이강주 25Ⅰ쌀과 누룩, 생강, 울금, 계피, 꿀 등의 재료를 사용해 은은한 단맛과 향을 지녔다. 증류주 중 비교적 도수가 낮아 그 자체로도 마시기 편안하며 물과 1:1 비율로 섞으면 더욱 부드러운 풍미로 즐길 수 있다.
- 당귀Ⅰ맛과 향이 셀러리와 비슷하면서도 한국 특유의 약재향을 가지고 있다. 워낙 향이 강해 으깨거나 셰이킹하지 않고 얼음과 부딪히는 동안 은은한 향이 배어나도록 했다.
- 복분자초Ⅰ도수가 높은 복분자주 대신 이강주를 베이스로 사용하고, 복분자초를 마지막에 곁들였다. 칵테일의 당도와 산도 밸런스를 맞춰줄 뿐 아니라 매력적인 빛깔도 더해준다.
- 매실 원액Ⅰ당귀의 이색적인 향 대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새콤달콤한 맛을 추가했다. 식후 매실차는 소화에도 좋다.
- 장프리고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62길 9-8
- T 02-2275-1933 / H 12:00-02:00, 금·토 12:00-03:00, 일요일 휴무
향기에 취하다
프레그릿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인근에 특급 호텔이 위치한 만큼 경리단길 <프레그릿>은 외국인 손님이 많이 찾는다.
“외국인 손님 대부분이 이 바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찾기보다는 우연히 들러요. 평소처럼 네그로니나 진토닉 등의 클래식 칵테일을 즐기죠. 그들에게 익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술을 소개하면 다들 새로워하고 좋아해요.”
평소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막걸리로 밀크 펀치를 만들어 서비스하거나 문배술, 화요 등의 증류주를 ‘코리안 샷’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해온 민경준 바텐더는 이참에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국의 맛과 향’을 칵테일에 담았다.
베이스는 이강고. 정통인 이강주 보다 도수가 높은 술로 이 역시 조정현 명인이 빚는다. 기분 좋은 단맛에 소화에 도움이 되어 예부터 식후주로 즐겼는데, 손님 대부분이 식사 후 바를 방문하는 것을 고려한 선택이다. 여기에 도라지와 가을이 제철인 배, 방아 잎을 갈고, 우엉은 송송 썰어 넣었다.
상대적으로 둔탁한 풍미를 가진 배와 도라지, 우엉에 ‘코리안 민트’라는 별칭을 가진 화사한 향의 방아를 더해 밸런스를 맞춘 것. 산도는 사과 미초로 맞췄다. 이 배합물을 끓인 우유와 섞어 하루 동안 숙성한 후 명주천에 걸러냈는데, ‘클래러파이(CLARIFY)’라 불리는 과정으로 투명한 칵테일을 완성하는 데 사용하는 기법이다.
마지막으로 방아 잎 오일과 꿀에 절여 말린 도라지를 가니시로 곁들이고 배와 솔잎을 침출한 식향을 뿌려 마무리했다.
바텐더이자 조향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다운 선택. “클래러파이 과정을 거친칵테일들은 향이 부족해요. 식향을 뿌리면 맛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손님이 칵테일 잔을 잡고 맛 보기 전까지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어요.”
그간 한국 술 칵테일을 종종 만들었지만 ‘온전히’ 로컬 재료만 활용한 것은 처음이라는 그는 의외로 쉬웠다고 말했다. 민트는 방아 잎, 오렌지의 당도는 배, 비터한 아마로 계열의 풍미는 도라지나 우엉 등 찾아보면 대체할 재료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
또 서양 술의 재료나 생산지보다 한국 술의 그것이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칵테일을 개발할 때 강점이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판매 가능한 레시피여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시물이 아닌, 직접 느낄 수 있는 로컬의 맛이어야 한다고.
- 경리단 도라지
식향의 상쾌한 솔 향이 기분 좋은 첫인상을 준다. 도라지, 배, 우엉에서 뿜어져 나온 단맛과 방아 잎의 화사한 향이 만나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는 한 잔. 꿀에 절여 말린 도라지 가니시는 오독오독 씹어 먹는 재미가 있다.
- 이강고 38Ⅰ정통인 이강주에서 도수를 높인 고도주. 누룩 양을 줄이고 숙성 기간을 늘렸으며, 그 외 원료인 배, 생강, 울금, 계피의 함량도 늘려 향취가 강하다.
- 도라지Ⅰ꿀에 절여 건조 후 가니시로 곁들였다. 안주 삼아 오독오독 씹어먹는 재미가 있다.
- 배Ⅰ한국의 대표 가을 과일. 서양 배와 달리 달고 시원한 맛을 지녀 칵테일에서 오렌지의 당분을 대체할 만하다.
- 우엉Ⅰ칵테일 배합물에 우엉을 송송 썰어 넣고 하루 동안 숙성했다. 이강고의 달달한 약재향과 잘 어울린다.
- 방아 잎Ⅰ‘코리안 민트’라는 별칭을 가졌다. 화사한 향이 다른 묵직한 재료들과 만나 밸런스를 맞춰준다.
- 솔잎Ⅰ솔잎과 배를 침출 해 먹을 수 있는 향수를 만들어 뿌렸다. 클래러파이 과정을 거친 칵테일에 부족한 향을 채워준다.
- 프레그릿 /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 26
- T 02-797-0380 / H 19:0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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