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롯데호텔의 김세한 셰프(조리장)는 89년 외식업계에 입문해 약 30년간 청와대 국빈만찬 준비는 물론 각종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수상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작년에는 준명장급인 우수숙련기술자를 획득했다. 김세한 셰프는 19살까지만 해도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하던 유도 유망주였다. 뜻하지 않는 부상으로 꿈을 한순간에 잃었지만 요리사라는 제2의 꿈을 만났다. 운동선수 특유의 승부욕과 정신력을 요리에 쏟아 부은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도 도복을 벗고 조리사가 된 19살 청년 중·고등학교 시절 김세한 셰프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선수였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연일 훈련에 매진했으나 어깨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청년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꿈이 한순간에 좌절돼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 고민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하던 어머니를 옆에서 도왔던 기억이 났다. 요리솜씨가 좋은 어머니를 닮아 옆에서 곧 잘 따라했고, 동생들 도시락을 싸줄 정도로 재미도 느꼈다.” 당시 요리를 업으로 삼겠다는 그의 결정에 주변의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뜻을 세우면 끝
작년 11월 코로나로 창업시작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도쿄에 프랑스 전통요리를 선보이는 비스트로 ‘피크닉 도쿄(Picnic Tokyo)’가 문을 열었다. 교토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마츠이 유키 오너셰프는 2년 전 도쿄올림픽 개최에 맞춰 도쿄 진출을 준비해왔다. 코로나로 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해지자 그저 앉아서 기다릴 수만 없었다. 의상 디자이너에서 요리사로 변신한 마츠이 오너셰프 마츠이 오너셰프는 식당을 운영하기 이전에 의상디자인 학교를 졸업하고 잡지, 영화사에서 다자이너로 근무했다. 학창시절 학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로 프랑스 식당, 초밥점 등 다양한 식당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시작했던 음식점 일에 흥미를 느껴 취직하고서도 꾸준히 요리를 연마했다. 프랑스에 일을 위해 머물렀을 때도 출장요리사로 틈틈이 시간을 썼다. 이후 지인으로부터 식당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아 회사를 그만두고 쿄토로 이주했다.” 지인과 함께 기간 한정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마츠이 셰프는 자신의 창작 요리를 손님들이 맛있게 보는 모습을 보고 외식업에 매력에 빠져 창업을 결심한다. 요리 말고 상권, 입지, 마케팅 등 외식업 경영은 알지 못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국내 대표 한식기업 (주)전한(고기전문점 '강강술래' 포함 직영점 11곳 운영)의 김진민 총괄셰프는 약 47년간 갈비 한 분야만 파온 대가이다. 한국음식관광협회가 선정한 10대 명인으로 선정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음식에는 ‘요령이 아닌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오랜 세월 맛을 지켜온 김진민 셰프를 만나 갈비 대가가 되기까지 성장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요리 좋아하던 청년, 총괄셰프 오르기까지 72년 채 스무 살이 되기 전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진민 셰프는 서욱 북창동에 위치한 한국회관, 충무로의 만조갈비 등 한식 전문점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본격적으로 그가 갈비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전역 후 삼원가든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삼원가든은 45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대표적인 한식당 중 한 곳이다. “79년부터 삼원가든(전 삼원회관)에 들어가 22년간 근무하며 총주방장까지 역임했다. 지금은 대중화됐지만 돌솥밥을 식당에 도입하고, 고기 맛을 더욱 풍부하고 만들어 줄 수 있는 양파 소스 등 다양한 소스 개발도 함께했다. 무엇보다 소고기는 계절에 따라 먹는 사료 차이로 인해 육질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 차이를 줄이는 방법 연구에 많은 시간을…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은 Q·S·C(품질·서비스·위생) 세 가지를 전체 가맹점에서 얼마나 균일하게 유지하는 가에 달렸다. 코로나로 가맹본사의 가맹점 관리에 제약이 생긴 상황에서 푸드테크 기업 주식회사 외식인의 FQMA(프랜차이즈 품질 경영 에이전트)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FQMA는 외식인이 개발한 FQMS(프랜차이즈 품질관리 시스템) 앱을 이용해 데이터 기반 외식 브랜드 품질 진단을 하는 서비스다. 5년 이상의 외식업 경력과 전문 품질 점검 교육을 이수한 품질마스터가 업무를 담당한다. 오랫동안 셰프로 일하다 품질마스터로 변신해 전국을 다니며 프랜차이즈 가맹점 품질을 높여주는 외식인의 최지우 QM을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사하고 있는 품질마스터 업무란 품질마스터(QM)는 정기적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 품질을 진단해 해당 브랜드 가맹점의 품질 현황을 파악하고, 미흡한 점 개선 및 품질 유지 실패로 인한 위험을 예방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외식업계에서 일정 기간 이상 종사한 전문가들이 업무를 맡으며, 전문 교육도 별도로 이수해야 한다. 가맹본사의 품질점검 요청이 들어오면 미팅을 걸쳐 본사가 작성한 브랜드 표준서를 기반으로 경영방침과 핵
취업대신 창업을 하는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취업문이 좁아진 탓도 있지만 주체성이 강한 요즘 MZ세대는 회사에 소속되기 보단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능력을 펼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일본에서 23세이란 젊은 나이로 외식창업에 도전해 한 달 매출 500만엔(약 5천 3백만원)을 달성한 청년이 있다. 야마지 켄이치로 사장은 올해 4월 도쿄 오피스거리 상가 지하 1층에 배달전문 고스트레스토랑 ‘엑스 키친(X kitchen)’을 오픈해 운영 중이다. 한 분야의 장인 꿈꾸며 2019년부터 창업 준비 도쿄의 사립 종합대학 ‘호세이대학’에서 비즈니스학을 전공한 야마지 켄이치로 사장은 졸업 후 진로를 취업보다는 창업으로 잡고 있었다. 휴학을 하고 IT벤처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무선인터넷 설비 방문판매도 1년 정도 경험했지만 장래성이 보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 ‘장인’이 되고 싶었다. 특히 외식업 분야는 수십, 수백 년 된 노포가 많아 더 관심이 갔다. 시대에 맞게 IT기술을 외식업에 활용해 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작년 초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는 배달전문 플랫폼 우버이츠(Uber Eats)가 일본에서 활성화되던 시점이었다. 야마지…
오랜 식문화를 자랑하는 미식 국가들의 요리를 즐겨본 경험이 ‘교양’의 척도로 가늠될 때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K-푸드가 또 다른 한류를 이루는 지금, 한국, 나아가 수도 ‘서울’은 ‘요즘 어디가 맛있다더라’ 하는 주제만으로도 대화에 활기가 넘칠 만큼 흥미진진한 미식의 도시가 되었다. 그렇다면 서울의 미식은 무엇일까? 어떤 경쟁적 특징이 있을까? 일찍이 1996년 서울의 식문화를 조사해 책을 펴내고 이후로도 25년여간 한식에 대한 연구 활동을 활발히 지속해온 정혜경 교수에게 이 질문을 다시 던졌다. 한식 연구는 언제부터 했나? 한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35세쯤부터다. 영양학을 전공하고 30대에 대학교수가 된 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한식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만들 줄 알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한국의맛 연구회’에서 요리연구가 故강인희 선생님께 1년 동안 조리도 배우고, 한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쭉 공부했다. 그렇게 한식 이론을 비롯해 한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구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다 「서울의 음식문화」를 집필하게 되었나? 가장 먼저 썼던 책이다. 서울학연구소의 지원으로 우연한 계기에 쓰게 됐는데 지금
성공적인 외식 창업을 위해 이제 온라인 마케팅은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매장에서의 고객 반응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 블로그, 인스타그램, 배달앱 등을 통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가 매출과 즉결된다. 온라인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든 자영업자가 공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온라인 시장을 방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에 외식마케팅 전문 회사 ‘스튜’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위해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내 점포 점검받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스튜의 임찬민 대표와 만나 외식마케팅 전문 회사를 차리게 된 과정과 이번 프로그램 기획 취지에 대해 들어봤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임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의 책을 읽고 요약해서 가지고 다닐 정도로 외식 경영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 후 어머니가 운영하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하다 다음해 성균관대 프랜차이즈 CEO과정을 수강하며 본격적인 외식업의 길로 들어섰다. 프랜차이즈 CEO과정을 마치고 국내 최초 외식컨설팅기업 알지엠컨설팅에 입사해 외식 컨설턴트로 일할 기회를 가졌다. 외식컨설팅 회사에서 수많은 유망 프랜차이즈 시스템 구축, 성남시 부진점포…
서울 연남동의 유명 중식당 ‘진가(陳家)’를 운영하는 진생용 셰프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식대가이다. 방송에서 중식 사대문파 사부로 소개되고, 유통기업의 중식 밀키트 상품개발에도 참여한 그에게도 40년 배움의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주방 막내 시절에는 겨울에도 찬물로 식재료를 손질하다보니 손등이 마침 생선 도미껍질처럼 트기 일쑤였다고 한다. 연남동 골목에 위치한 중식당 진가를 찾아 진생용 셰프의 성장 이야기와 그만의 중식 철학을 들어봤다. 칼판 잡던 주방 막내에서 특급호텔 주방장이 되기까지 화교 출신인 진생용 셰프는 어릴 때부터 강원도 영월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럽게 중식을 접하게 됐다. 9살 때 서울로 이사를 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진 셰프는 대학진학 대신 요리사의 길을 선택했다. “20살 무렵 당시 남산에 있던 국빈이라는 중국집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식을 배우기 위해선 면 삶기, 전표 읽어주기에 이어 칼판을 잡는 것이 시작이다. 재료를 손질하는 6번째 칼판으로 일하다 지인 추천으로 82년 프라자호텔(현 더 플라자)에 입사하게 된다.” 10년 정도 호텔에서 경력을 쌓으며 칼판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중식 요리를…
매혹적인 커피 향에 이끌려 도착한 오스트리아. 그곳에서 바리스타 전 대위는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기술보다 더욱 큰 것, 카페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는 커피 문화와 커피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바리스타의 태도를 배웠다. 그윽하고 풍성한 커피 아로마와 닮은, 향기 있는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그의 지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유럽의 카페를 꿈꾸다 고등학생 시절, 취미로 커피를 배우기 시작한 아버지 덕에 매일 아침 집은 커피 향으로 가득 찼다. 그 당시 커피는 내게 그저 쓰게만 느껴지는 음료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 쓴맛이 묘한 매력의 맛과 향으로 바뀌어갔고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커피의 매력에 푹 빠진 뒤였다. 그래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되리라 결심했다. 고등학교 위탁 교육을 통해 제과, 제빵, 그리고 커피를 배우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후 스무 살에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인사 예절부터 서비스까지 하나하나 배워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후 군대에서 재미 있는 친구를 만났다. 바로 요리사 정재호다. 나는 커피에 대한 열정이 큰 것처럼 그는 요리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고 우리는 군 생활 내내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의 집'은 1957년부터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궁중한정식, 전통 한식을 선보이는 곳으로 현재 한국문화재단이 운영 중이다. 품격 있는 한식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어 서울의 주요 관광지로 꼽힌다. 유명곤 조리수석은 궁중음식보급팀 소속으로 한국의 집에서 한식을 책임지는 이 중 한명이다. 30년 넘는 시간동안 한식 쉐프로 지켜 온 그만의 음식 철학과 성장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호텔 조리사로 일하며 청와대 국빈만찬 참여 70~80년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기업이 중동 건설붐을 일으킬 때였다. 유명곤 세프도 자격증을 취득해 해외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특급호텔에서 한식조리사를 찾는 수요가 늘며 코리아나호텔에 조리사로 들어가게 된다. “아시안게임, 올림픽...연이은 국제대회로 국내경기가 호황이었다. 호텔 한식당에서는 일할 조리사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식 중에서도 주로 소갈비와 냉면 파트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프라자 호텔 아사달의 First Cook(요리장)을 거쳐 조선호텔 한식부분 팀장으로 7년간 근무했다.” 근무하는 동안 청와대 국빈만찬 행사에도 몇 차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