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사이트] 토종 스페셜티 커피의 자부심

강릉의 커피 신이 재미있다. 수준급 스페셜티 커피를 선보이는 비범한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바다 풍경 속 커피 투어를 즐기려는 국내 피서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강릉 커피 열풍의 시작과 중심에는 ‘테라로사’가 있다. 이제는 강릉을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부상 중인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를 만났다.

 

 

브랜드명 ‘테라로사’는 어떤 의미를 품고 있나?

 

사전적인 의미는 붉은색 석회질 토양이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을 당시, 브라질의 테라로사 토양에서 황금 작물인 원두가 잘 자랐기 때문에 브라질어로 ‘희망이 있는 땅’이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커피와 같은 공산물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테루아와 커피의 역사, 기원을 내포하는 단어다.

 

평범한 은행원이었는데 2002년 강릉에 <테라로사>를 오픈했다.

 

언젠가 시골에 집 짓고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강릉에 땅과 작은 집을 마련했다. IMF 때 명예퇴직을 했고, 1999년 집 근처에서 식당을 열어 커피도 함께 판매한 것이 시작이 됐다. 커피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돼 2002년 <테라로사>를 열며 본격적인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관광지와도 먼 강릉 내륙 지역에 카페를 연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많았다.

 

커피를 공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여행했다고 들었다.

 

맛있는 커피에 대한 기준이 스스로 확고해야 하는데 국내에선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일본이 커피를 잘한다고 해서 처음엔 일본의 카페들을 무수히 다녔고, 점차 유럽의 커피 서적을 접하며 알게 된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 로마의 <카페 그레코>, 빈의 <카페 센트럴> 등 유럽의 전설적인 카페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커피 자체보다는 ‘카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벤치마킹으로 삼은 해외의 카페가 있었나?

 

초기엔 일본의 오래된 카페들을 모델로 삼았다.

몇 대를 이어 영업하는 유명 카페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당시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들은 원료에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종합 상사들의 수입 원두를 선별 없이 받아서 로스팅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반엔 나도 일본 상사의 원두를 받아 썼지만, 2005년 이후 뉴욕, 시애틀,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유명 커피 도시들을 다니며 요즘 말하는 '스페셜티 커피’의 개념에 눈뜨게 됐고, 좋은 그린빈을 잘 선별해 받는 것이 커피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라로사> 강릉점에는 대규모 커피 공장이 있다. 좋은 원두 생산을 위해 신경 쓰는 점은?

 

브라질, 에티오피아 등 15개국에서 생두를 공수하고 로스팅해 전국 <테라로사>로 유통하는 원두 규모가 연간 7백 톤 정도다. 같은 원산지라도 그린빈의 퀄리티가 그때그때 달라서 원료를 잘 선별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로스팅은 전체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한 가지만 삐끗해도 전체가 엉망이 되기 때문에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작업이 굉장히 어렵다. 원두 맛에 대한 나의 기준이 워낙 높아 결과물에 대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땐 <테라로사>의 원두가 국내 최상위권에는 든다고 자부한다.

 

그런 노력들이 오늘날의 ‘강릉 커피 거리’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강릉 커피 거리 조성에 우리가 기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테라로사>를 열고 5년 정도 지나서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주변에 조금씩 카페가 생기기 시작했고, 강릉시에서도 관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부분이 많다.

다만, 우리가 국내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남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에 커피 문화 확산에 영향은 미쳤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커피 레슨을 받은 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배출해낸 커피 문하생도 꽤 많다.

 

 

강릉이 세계적인 커피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갖춰야 할 점은?

 

미국 시애틀이나 호주 멜버른처럼 커피 맛과 공간 디자인이 뛰어나 ‘카페 투어’를 다닐 만한 업장이 10-20곳 이상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사실, ‘바’만 봐도 그 카페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어떤 그라인더를 쓰는지, 그리고 바리스타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를 유심히 본다.

그라인더는 마치 ‘주방장의 칼’처럼 커피 맛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도구이고, 바의 효율적인 디자인은 전체 공간의 어우러짐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된장찌갯집은 공간이 허름해도 맛만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가지만, 카페는 공간이 주는 만족감을 충족시켜야 발길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멋진 공간을 찾아가는 이유는 자신이 그 공간 안에 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강릉 본점에서는 카페와 함께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문화예술의 도시’로 꼽히는 곳은 멋진 미술관이나 도서관, 레스토랑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강원 지역은 이런 기반이 충분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테라로사>에서 강원도의 구황 작물을 테마로 한 메뉴들을 차려냈고, 매년 여름 열리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도 세계곳곳에서 온 음악인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에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는지 여부는 그 지역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6월 기준, 전국에 21개의 지점이 있다. 강릉의 로컬 카페들 중 가장 빠른 규모로 지점을 확장하고 있다.

 

한 해에 2백여 곳씩 확장하는 스타벅스와 비교하면 1년에 한 곳꼴로 지점을 늘려간 셈이라 빠른 확장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은 ‘Slow slow but quickly’다. 한 기업의 생장 주기를 1백 년으로 본다면, 이제 20년이 넘은 우리는 아직 유아기 단계다.

 

커피를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약 1백60년의 역사를 지닌네슬레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커피 생두가 한 톨도 안 나는 스위스에서 시작해 현재는 전 세계 커피 시장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굳건하게 성장하려면 내부적인 힘을 먼저 키운 뒤 조금씩 몸집을 불려가야 한다.


" 된장찌갯집은 공간이 허름해도 맛만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가지만, 카페는 공간이 주는 만족감을 충족시켜야 발길이 이어진다 "

김용덕 대표


각 지점마다 차별화된 콘셉트와 디자인을 지녔다. 특히 광화문점은 예스러운 가구들과 박물관에 온 듯 전시된 커피 기구들이 인상적이다.

광화문점은 <테라로사>의 서울 첫 점포다. 이곳에 비치된 예술 서적들과 골동품, 커피 기구들은 내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직접 수집해온 것이다.

 

 

공간에 새것만 배치하기보다는 고가구 등의 옛 소품도 어우러져야 중심이 잡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로변에 지점을 세우지 않는다는 철칙도 지킨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커피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찾아오게 만드는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지점 중 주변 지역 문화와 잘 어우러진 디자인을 갖춘 사례를 소개한다면?

 

부산 수영점은 1960년대 폐공장을 리뉴얼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국내 재생 건축 디자인의 좋은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포스코센터점은 철강 회사의 DNA를 살려 철 소재의 오브제들로 아름답게 꾸며 포스코 임직원들의 사랑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지점은 제주 서귀포점이다. 주변 숲의 풍경이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설계해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면 자연의 품에 안긴 듯 행복한 기분이 든다.

 

머지않아 <테라로사>가 유럽 무대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 안에 프랑스 파리에 <테라로사>를 세울 계획이다. 세계인이 동경하는 문화예술의 도시이자, 고급 식재료들이 몰려드는 미식의 도시에 첫 깃발을 꽂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성공한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용덕 KIM YONG DEOK

 

 

토종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테라로사를 운영하는 ㈜학산의 창업자.

 

2002년 강릉 내륙 지역에 <테라로사>를 오픈한 후, 현재는 전국에 21개 지점을 갖춘 국내 대표 커피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로스팅 및 커핑 마스터로서 커피 제품 퀄리티를 향상시키고,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일들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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