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라이프] 제주에서 만난 내일의 맛-1

육지에서 약 90km 떨어진 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는 뭍과의 물리적 거리만큼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온 지역이다. 특히 온화한 기후와 너른 해역,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 아래 형성된 식문화는 저마다 다른 팔도의 그것들 중에서도 고유하다. 해외 하늘길이 닫히면서 여행에 배고픈 이들이 대거 제주를 찾는 통에 너나없이 가본 듯한 필수 여행 지역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제주의 속살은 매일 세포 분해를 하듯 오늘도 성장 중이다.

 

 

전통의 명맥을 이어온 원주민과 제주만의 가치를 발견하여 정착한 이주민, 고향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차세대 로컬들은 ‘땅밭’과 ‘바당밭’에서 얻은 식재료로 향토 음식을 잇는 동시에 제주 전통문화의 보존과 확산을 고민하며 내일을 짓고 있다.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제주와 도시를 잇고, 오늘과 내일을, 한국과 세계를 잇고 있었다. 그 이음의 현장에서 마주한 사람과 제주의 맛을 만나보자.

 

Part 1. 미식 여행

 

제주 바당의 맛

남쪽 섬 제주에서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또 다른 밭이다. ‘바당밭’에서 길어 올린 각종 어패류와 해조류, 생선을 중심에 둔 바다의 맛을 느껴보자.

 

숨비 소리 깃든 한상차림 ‘해녀의 부엌’

 

 

얇은 천 조각으로 짠 물소중이와 적삼 한 장을 걸치고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질을 해야 했던 어린 해녀들의 삶은 뾰족한 뿔로 파도를 견디는 뿔소라처럼 강인하고 억척스러웠다.

 

점점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를 공연하는 극장식 레스토랑이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생겨났다. 2019년에 오픈한 <해녀의 부엌>이 그 주인공. 20여 년 전 지어져 방치되던 활선어 위판장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종달리 최고령 해녀인 권영희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연극 공연을 시작으로 식사가 시작된다.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로 만든 한상차림을 푸짐하게 즐긴 후 해녀와의 대화로 마무리되는 방식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김하원 대표는 제주 해녀 집안의 딸이다. 해녀가 일일이 손으로 채취하는 뿔소라의 가치가 오랫동안 저평가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그녀는, 해녀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공연과 식사가 함께 진행되는 이색 다이닝 공간을 선보이게 되었다. "해녀의 삶이 담긴 공연과 이들이 직접 채취하고 준비한 음식을 통해 진정한 제주의 맛을 경험해볼 수 있어요."

 

그리고 마을마다 다양한 해녀 문화와 토종 해산물을 알리기 위한 노력으로, 최근에는 조천읍 북촌리에 2호점을 오픈했다. 동쪽 끝 해안가에 위치한 북촌리는 다려도를 끼고 풍부한 해산물이 채취되는 곳으로 유명한데, 제주 4·3사건이 발생한 암울한 근현대사를 간직한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의 중심 터 역할을 하는 북촌어촌계 건물에 자리한 2호점은 해녀가 채취한 뿔소라와 돌문어, 군소, 갈래곰보 같은 신선한 해산물과 인근 농가에서 수급한 로컬 식재료로 멋들어진 코스 요리를 낸다. 일명 ‘해녀 파인 다이닝’인 셈이다.

 

 

북촌리 2호점은 주인공인 고인숙 해녀를 비롯해 토박이 주민인 오민주 요리사와 이민우 청년 셰프가 협업하는 공간이다.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향토 음식을 재해석해서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라는 이민우 셰프는 자신의 전공인 프렌치 조리법에 제주의 해산물과 해녀의 내림 음식을 가미해 흥미로운 변주를 주고자 한다.

 

애피타이저로 내는 상화떡에 특제 된장 스프레드와 동백 오일을 곁들이고, 돌문어 촛국은 토마토워터를 베이스로 그 위에 갈래곰보와 겉을 크리스피하게 익힌 돌문어를 올린다. 이어서 나가는 뿔소라 요리에는 우도 출신인 고인숙 해녀의 스토리가 담긴다.

 

나무조차 귀할 정도로 척박한 우도의 자연환경 때문에 바다에 떠다니는 감태를 땔감으로 쓰던 것에서 착안해서 소라를 감태칩으로 훈연해 바다 향을 가득 입힌다. 그 후 메인 식사인 몸국과 잡곡밥, 돔베고기와 생선스테이크로 구성된 한상차림으로 마무리된다. 각 요리마다 더해지는 가니시용 채소와 색색의 식용꽃 모두 해녀의 우영팟에서 구해오는 것. 그외 식재료도 대부분 지역 농부들과 제주 산지에서 수급하면서 소농민과의 협업도 이루어가고 있다.

 

 

새로운 시도는 공간에서도 펼쳐진다. 입구에 들어서면 해녀들의 고된 삶과 아픔을 녹인 지역 예술가들의 사진과 설치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 있고, 이를 지나 부엌문을 열면 뒤로는 매핑월(mapping wall) 인테리어로 구성된 다이닝 공간이 펼쳐진다.

 

공간을 하나로 아우르는 원형 테이블과 마치 바닷속으로 들어온 듯한 영상과 음향으로 인해 제주 바다와 이곳의 삶이 주는 울림이 그대로 전해진다. 제주의 로컬 식재료와 함께 생생한 해녀의 스토리를 담은 내레이션으로, 해녀의 밥상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 해녀의부엌 북촌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9길 31

 

수두리보말의 담백한 매력 ‘중문수두리보말칼국수’

 

 

보말죽, 보말칼국수, 보말미역국…. 보말 요리는 제주 하면 떠오르는 명물이지만 친숙한 식재료로 자리 잡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제주어로 바다 고둥을 일컫는 보말은 본래 제주 사람들에게나 익숙한 재료였다. 그중 고둥의 한 종류인 두드럭고둥은 수두리보말이라고 하는데, 보통 고둥보다 크기가 크고 붉은빛이 돌며 끝맛이 쌉쌀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수두리보말로 처음 칼국수를 만들어 판매한 곳이 바로 중문에 위치한 <중문수두리보말칼국수>다.

 

 

 2013년 9월 문을 연 이곳은 톳수두리보말칼국수로 알려진 곳이다. 모슬포구에 살았던 김영규 대표와 가족에게 이 칼국수는 추억의 음식이라고. 어린 시절, 해녀였던 할머니가 바다에서 건져온 수두리보말로 칼국수나 국을 끓여주던 기억이 선명하단다.

가족은 그 맛을 살려 칼국숫집을 열었고 김 대표의 어머니가 주방을 맡아 손맛을 선보이고 있다. 2019년에 옆 건물로 한 차례 이전한 뒤에도 여전히 이른 시각부터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제 제주도 곳곳에서 수두리보말칼국수를 맛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재료를 섞지 않고 오로지 수두리보말로만 국물을 낸다. 조리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수두리보말을 삶은 뒤 뾰족한 도구로 속살을 빼낸다.

 

그중 내장은 으깨 육수를 내고 몸통 살은 건더기로 넣어 씹는 맛을 살린다. 내장을 살뜰히 사용했기에 육수의 색이 진한 것이 특징. 면의 색깔도 독특한데, 비밀은 바로 제주산 톳이다. 밀가루와 톳가루를 7:3 비율로 혼합해 반죽한 뒤 공간 한편에서 저녁마다 면을 뽑아낸다. 그렇게 제면한 국수는 다음 날 사용하기 위해 하룻밤 동안 숙성을 거친다. 수두리보말 육수에 면과 몸통 살, 그리고 미역과 유부를 한데 넣고 끓이면 구수한 칼국수가 완성된다.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바로 성게전복죽이다. 본래 보말죽을 함께 판매했으나 보말의 인기가 높아지자 수급이 어려워 여름부터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전복 내장과 성게로 육수를 낸 뒤 불린 쌀과 함께 뭉근하게 끓여낸 죽은 녹진하고 고소한 데다 부담 없이 속을 채워준다. 그래서인지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이곳은 가볍게 식사를 하려는 손님으로 금세 가득 찬다.

 

 

반찬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는 것 또한 이곳의 자부심이다.

단출하게 김치와 무생채, 양파절임을 준비하는데, 모두 국내산 재료로 만든다. 특히 김치는 중문 5일장에서 배추를 사다가 5일마다 담근다. 담백한 칼국수와 죽에 빼놓을 수 없는 찬이기에 정성을 담아 내놓는다.

 

저녁 영업 없이 오후 5시에 문을 닫지만 이곳에서는 마감 후에도 수두리보말과 전복을 손질하고 면을 뽑는 등 다음 날 준비로 분주하다.

바닷마을 해녀 가족이 오손도손 나눠 먹던 음식은 이웃을 넘어 뭍 사람과 여행객의 속까지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다.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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