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에서 살아남은 일본 기업의 비결은?

일본은 20년 이상 저성장‧저물가‧저소비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익구조, 기업 문화 등 경영방침 변화 통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체질을 변화시켜 나갔다. 해외 진출, M&A, 가격 정책 등의 전략을 통해 성장동력을 창출한 실제 일본 기업의 사례 소개한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

일본 경제는 1990년까지 고도성장 가도를 달려왔으나, 1990년대 초반에 버블이 붕괴되면서 20년 이상의 오랜기간 동안 저성장 국면을 맞이했다. 이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며, 이 기간 일본에서는 저성장, 저물가, 저소비라는 ‘3저(低)’ 현상이 계속됐다.

 

일본의 연도별 경제성장률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까지는 5%대 수준이었으나 1990년대 전반에 1%대로 급락한 이후 2000년대에는 0%대의 성장률이 지속된 것을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본격화된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의 성장을 다시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으나, 결과적으로 2018년까지 6년간의 연평균 성장률은 1.2%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도쿄대학교의 이토 모토시게 교수는 최근 일본 경제의 회복세를 욕조에 비유하면서, 욕조는 충분히 데워졌지만 욕조 안의 물에 해당되는 소비 및 투자심리, 지역 경제는 아직 데워지지 않은 것으로 진단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장기 저성장이 이어진 결과, 일본의 1인당 GDP가 20여 년간 3만 달러 대(2018년 기준 세계 26위)에 머무는 등 소득 수준도 정체를 보였다. 이외에도 대외적으로는 세계에서 일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으며, 대내적으로는 국부 및 가계 소득 악화, 소득분배 악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최근 2년간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플러스를 기록하기는 했으나, GDP 디플레이터는 여전히 마이너스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자신 있게 디플레이션 탈출을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즉,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자기실현적 경로를 통해 실물경기의 침체를 확산하여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이 때문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디플레이션이 경제 활력을 상쇄함과 동시에 금융정책의 유효성을 저하시키는 ‘무서운 만성병’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과 닮아 있는 한국 경제?

한국의 2019년 3분기 경제성장률의 부진(0.4%)으로 인해 사실상 2019년 전체 경제성장률은 2% 이하가 될 확률이 높아졌다. 국제금융센터에 의하면 해외 9개 IB는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2019년 9월 기준 평균치)로 보고 있어 내년에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미‧중 무역분쟁 등의 대외적인 리스크로 인해 한국 기업들의 수출 및 투자 심리도 얼어붙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일본형 장기 불황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버블 붕괴로 인해 초래됐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의 현재 상황과는 상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불황 속에서 성장을 일구어낸 일본 기업들의 성공사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국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장 뚫어 활로 모색

‘잃어버린 20년’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일본 기업들 중에는 기존의 일본 시장에서 경제와 인구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신흥국가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스즈키는 인도 국유기업인 마루티에 출자하는 형태로 인도 시장에 조기 진출했으며 생산에서 판매까지 철저하게 현지화하는 데에 성공해 인도의 ‘국민차’(인도 자동차 시장점유율 49.8%)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해외에 신규로 직접 진출하는 대신에 후지필름처럼 적극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활용하여 새로운 시장에 도전한 기업도 존재한다.

 

1934년에 설립된 후지필름은 본래 사진용 필름 제조에 주력하고 있었으나, 2000년대에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시장 환경이 급변했다.

 

2007년에 디지털카메라의 출하대수는 1,000만 대 이상을 기록한 데에 비해서 필름 카메라는 단 5만 대(2001년 350만 대 대비 1.4% 수준으로 축소)에 불과했고, 이로 인해 후지필름, 코닥 등으로 대표되던 필름 업계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 특히 코닥의 2008년 영업이익은 2000년 대비 98.5% 줄어든 34억 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2000년부터 30건 이상의 국내외 M&A(인수자금 4,800억 엔 이상)를 활용해 대담한 사업 조직 개편과 다각화를 추진했다.

 

2001년에는 제록스를 자회사로 흡수하면서 기존의 이미지 솔루션(필름 관련) 부문을 축소하고 문서 솔루션의 비중을 확장했는데, 이는 기존 사업과 최대한 연계성이 높은 분야에서 다시 경쟁력을 키우고자 한 계산의 결과였다.

 

이후 경영진은 필름 제조기술을 응용할 경우 의료분야에서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2006년에는 DRL, 2008년에는 도야마화학공업, 후지화학 등을 인수합병해 헬스케어 시장에 새롭게 진출했다.

 

 

비주력 부문을 축소해 나가다가 결국 2012년 파산한 코닥과는 달리, 후지필름은 종합 바이오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에 성공했고, 또한 2018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2,098억 엔/회계연도 기준)을 달성한 바 있다.

 

특히 전체 매출액의 약 20% 비중을 차지하는 헬스케어의 경우 다른 사업 부문 대비 월등히 높은 성장률(9.3%)을 기록해 후지필름의 효자사업으로 손꼽힌다.

 

어중간한 가격 정책은 NO! 양극화된 소비를 잡아라!

많은 경제 전문가들에 의하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소득 양극화 등으로 인해 소비가 양극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기에 소비 패턴은 크게 부가가치가 높은 고가 제품에 대한 ‘프리미엄 소비’와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제품을 추구하는 ‘가성비 소비’로 나누어진다.

 

이로 인해 백화점에서 수십만 엔 대의 명품을 사면서도 정작 생필품은 백 엔 숍에서 구입하는 등의 모순적인 소비도 등장하게 되며, 이에 따라 오히려 중간 가격대의 제품은 잘 팔리지 않는 경향이 커진다.

 

 

일본 최대의 종합 할인매장인 돈키호테는 저가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돈키호테는 ‘놀랄 만큼 싸다(驚安)’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온라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몰았으며, 최근 한국에서 이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쇼핑’이 등장하기도 했다.

 

 

반대로, 소니의 경우 초고가 제품에 주력하는 ‘프리미엄 시프트’를 통해서 부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때 전자업계의 강자였던 소니는 한국, 중국 등 경쟁사의 등장으로 인해 실적 부진에 빠지고 특히 텔레비전 부문이 크게 위축됐다. 소니의 텔레비전 부문은 2005년(회계연도 기준)부터 10년간 약 8000억 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또한, 디지털카메라가 부상하던 2000년대에는 DSLR 시장에서 경쟁사인 캐논과 니콘에 밀리기도 했다. 위기감을 느낀 소니의 경영진은 ‘프리미엄 시프트’를 선언하고 초고정밀 TV,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노이즈 캔슬링 무선 헤드폰 등 하이엔드 상품 개발에 주력했다.

 

 

저가 가전제품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에 소니는 20만 엔 대의 헤드폰, 30만 엔대의 워크맨, 800만 엔 대의 홈시어터 등을 선보이며 오디오 분야에서 매출을 확대해 나갔다. V 부문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55인치보다는 8K‧16K등 초대형 TV에 집중하고 업계 평균가 대비 10% 높게 가격을 책정하는 등의 전략을 고수하는 중이다.

 

파격적인 고가 전략을 통해 소니는 경영실적(2018년 회계연도 기준 전년 대비 영업이익 22% 증가)과 브랜드 이미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현재 소니의 이미지 센서와 무선 헤드폰은 각각 전 세계 시장에서 50% 이상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2010년부터 공을 들여온 미러리스 카메라의 경우 소니 독주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통해 천천히 오래 성장하기

minitts는 교토의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하루에 한정된 수량의 음식만 판매하고 매진이 되면 바로 가게 문을 닫는 방식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평범한 워킹맘이었던 나카무라 아케미 대표는 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경영 실적과 직원들의 행복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제4회 교토 여성 창업가’ 최우수상, ‘2019 닛케이 Woman of the Yaer’ 대상 등을 수상했다.

 

 

나카무라 대표는 재해, 불경기 등 나쁜 일이 닥치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출을 줄이’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기존 외식업계에 만연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통해 매출을 늘리는 방식의 경우 생산성을 높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잘 팔려도 100개만 판다’와 ‘야근 제로’라는 나카무라 대표의 방침으로 인해 그녀가 경영하는 인기 스테이크 덮밥집 ‘햐쿠쇼쿠야(佰食屋)’의 영업시간은 하루 평균 3.5시간에 불과하다.

 

종업원들은 저녁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면서도 ‘백화점급’의 높은 급여를 받기 때문에 만족도가 매우 높고, 이는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한 정성, 그리고 고객에 대한 친절함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업무시간이 짧기 때문에 미혼모, 장애인 등도 고용할 수 있어 사회적인 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량 한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현재 나카무라 대표가 운영 중인 3개의 점포에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30분~2시간가량의 줄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가 높다.

 

 

또한 나카무라 대표는 햐쿠쇼쿠야의 점포 확장 자체에는 관심이 없으나, 햐쿠쇼쿠야에서 일하는 방식은 프랜차이즈화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히토츠바시대학의 나와 타카시 교수는 기업들이 더이상 고성장 시대에 누렸던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증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저성장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경영전략의 수립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최근 한국은 글로벌 경기 둔화, 내수 부진,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이 겹치면서 기업의 체감경기가 악화됐으며, 앞으로 저성장이 뉴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경기 회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앞서 저성장 시대를 경험한 일본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성공 및 실패 요인을 배운다면 위기 대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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