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라이프] 한 접시의 요리, 여행의 목적이 되다

 

장소에 대한 기억을 지배하는 식당들이 있다. 지역을 속속들이 방문한 것도 아니건만,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그곳의 토양과 계절을 말해주는 듯한 특별함을 선사하는 곳. 제철 식재료와 특산물로 접시 위에서 지역을 빛내는, 오직 이곳을 위해 여행을 떠나도 좋을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 다섯 곳을 소개한다.


안동 식문화의 명맥을 잇다 - Suunjapbang Heritage Dining

 

인문학의 고장 안동, 유네스코 셰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의 나루터 앞, 고택의 정취가 흐르는 호텔 ‘락고재 하회 한옥호텔’에는 한국 미식 유산을 잇는 <수운잡방 헤리티지 다이닝>이 있다. 이름 그대로 1500년대 중반 조선 중종 때 유학자 탁청정 김유(1491-1555) 선생과 그의 손자 계암 김령(1577-1641) 선생이 세대를 이어 집필한 고조리서 「수운잡방」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현재 광산 김씨 예안파 설월당 종가 15대 종부 김도은 관장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이 전통을 잇지 않으면 수운잡방의 맥이 끊긴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전통을 이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거룩한 헤리티지다. 때문에 조리서의 기록을 변형하지 않고 본연의 맛을 내는 데 열중한다. 더하지 않고 덜하지 않은 안동의 테루아와 역사가 그릇 안에서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전통과 미식의 관점에서 안동은 어떤 지역 인가.

 

안동은 우리나라에서 오랜 종가가 밀집한 지역으로 유교문화의 본산이자 인문학의 고장이 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까지 전승되고 있는 한국 고조리서 「수운잡방」을 비롯해 「음식디미방」, 「온주법」 모두 안동의 고조리서 로, 안동은 전통과 미식에서 독보적인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특히 궁중 음식, 사찰 음식, 종가 음식, 민가 음식 중 ‘순수한 한식의 시작’이라 할 수있는 종가 음식의 원형을 보존한 곳이다. 단순히 양반가의 음식이 아니라 인문학적 사유와 기품이 스며든 미식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수운잡방」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메뉴는.

 

중요한 유산 중 하나가 ‘꿩젓갈’이다. 보통 어류로 젓갈을 만들지만, 「수운잡방」에는 육류로 젓갈을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꿩젓갈을 모든 요리에 소스로 활용한다. 또 하나는 안동찜닭의 원형으로 알려진 ‘전계아’가 있다. 당면이 들어가지 않을 뿐 지금의 안동찜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닭의 껍찔과 뼈째 조리하는데, 특히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라고 되어 있다. 당시 귀하디 귀했던 참기름을 아끼지 않은 것에서 가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수운잡방」에 기록된 소주 레시피에 기반해 만든 안동소주를 곁들여 보길 추천한다.

 

안동 접빈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음식, 특히 종가 음식의 정수는 ‘그 사람만을 위해 갓지어낸 밥상’에 있다. 귀한 손님을 위해 제철 재료로 즉석에서 음식을 만드는 정성, 그것이 접빈의 핵심이다. 안동 지역은 화강암과 마사토가 섞인 특유의 토질 덕분에 채소와 과일, 쌀까지 타 지역과 확연히 다르게 우수하다. 그래서 저는 외부에 강의를 나갈 때도 조리 도구는 그 지역 것을 쓸지 언정, 식재료만큼은 반드시 안동의 것을 챙겨 간다. 안동 땅이 키워낸 재료가 아니면 그 맛을 온전히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안동을 방문할 여행객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안영환 회장의 헌신과 안목으로 완성된 ‘락고재 하회 한옥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길 권한다. 도자기를 비롯해 객식을 장식한 기물들 모두 진품 문화재이며, 다이닝에 사용하는 일부 그릇 중에는 조선백자와 청자도 있다. 바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안동은 겨울에 상당히 춥고 여름에도 무덥다. 계절의 매서움을 피하지 못할 때는 안동관광택시를 이용해 곳곳을 탐방할 수 있다. 안동시청 홈페이 지에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으니 활용하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수운잡방 헤리티지 다이닝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86-20
  • 054-857-3410


왕의 온천에서 머무는 시간 - Miseon

 

태조 이성계가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찾았다는 왕의 온천, 충주 수안보. 1000년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진 치유의 물길 위에 하이엔드 호텔 ‘유원재’가 있다. 조선의 서원 書院과 한옥의 배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단층 건물은 주변 산세와 나란히 호흡하고, 담장으로 나눈 객실마다 조성된 개별 정원이 고요한 쉼을 선사한다.

 

그 쉼의 시간에는 컨템퍼러리 한식 다이닝 <미선>이 제공하는 식사도 함께다. 유원재가 추구하는 치유의 철학을 미각으로 확장한 공간으로, 오직 숙박객만 이용이 가능하다. 식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개별 프라이빗 룸을 마련해 대접받는 기분을 물씬 선사한다. 김유재 총괄 셰프가 테이블에 올리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닌 공간의 결에 맞는 ‘한국적 미식의 서사’. 해외 특급 호텔, 100년 역사의 일본 료칸 등을 거친 경험을 발판 삼아 로컬 식재료에 전 세계 다양한 조리법을 접목한 요리들이 장인의 도자기와 방짜유기에 담겨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자태를 뽐낸다.

 

 

<미선>이 정의하는 한국적 맛의 본질은 무엇인가.

 

‘재료가 지닌 기억’을 꺼내는 일이다. 실제로 메뉴를 구성할 때 로컬 재료의 풍미를 출발점 으로 삼는다. 식재료는 지역의 토양과 기후, 농부의 시간이 응축된 기억의 집합체다. 기교로 재료를 덮기보다, 재료가 지닌 본연의 향과 뉘앙스를 존중하며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자라온 환경, 기억, 계절의 변화처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맛들이 저를 가장 크게 움직이듯,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와 맛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한국의 맛이라 생각한다.

 

대표 메뉴를 소개한다면.

 

‘해산물 플래터’는 이름 그대로 제철 해산물을 한 접시에 담아낸다. 여기에 실제 온천수를 부어 증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연출했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시각적 즐거움까지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잎새버섯 솥밥’ 은 <미선>의 조리 철학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메뉴다. 잎새버섯은 조직감이 섬세하고 향의 스펙트럼이 넓어 열과 수분 정도에 따라 풍미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이 섬세함을 명확히 전하기 위해 조미는 최소화하고 열전달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전통 솥을 사용했다. 코스 전반에 어울리는 술로 충북 무형유산인 ‘청명주’를 추천한다.

 

 

​음식뿐 아니라 기물과 공간의 조화에 공을 들였다. 미식의 여정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적정 조도와 온도, 습도까지 세심하게 조율한 개별 다이닝룸에서 식사가 진행된다. 창밖으로 펼 쳐진 정원 풍경이 더해져 <미선>만의 치유 무드를 형성한다. 여기에 8대째 이어 내려오는 장인의 도자기와 방짜유기를 사용해 한식의 깊이와 격조를 더했다. 접시가 가진 색감과 질감, 장인의 숨결이 요리와 어우러질 때 비로소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 서사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로컬과의 상생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있다면.

 

재료가 지닌 식감과 향미를 최대한 살리는 조리법을 설계하는 것. 이건 비단 맛뿐 아니라 버려지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허브나 채소는 지역 생산자에게 직송함으로써 운송과 저장 과정에서 발생되는 환경 부담을 덜어낸다. 앞으로 지역 생산자와 협업을 더 강화해 맛과 철학, 책임감이 함께하는 미식 문화를 만들어가겠다.

 

  • 미선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주정산로 6
  • 043-820-8100

울릉도의 음양오행을 플레이팅하다 - La 鬱

 

250만 년 전 거대한 화산 활동으로 태동한 섬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시작해 성인봉을 지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송곳산까지, 바람과 파도를 따라 대자연의 기운이 흐르는 곳에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울릉도’가 있다. 영국 디자인 매거진 「월페이퍼」에 ‘세계 건축가 20인’으로 선정된 김찬중 건축가가 자연의 기운이 막힘 없이 흐르도록 건물을 배치하고, 넓은 통창을 통해 동해의 비경을 내부로 끌어들였다.

 

이 장광 속에 오직 숙박객을 위해 존재하는 ‘울릉 컨템퍼러리 다이닝’ <라 울>. 주방을 이끄는 전형우 총괄 셰프는 계절이 뚜렷하고 지형이 극적이며, 식재료의 성질이 강렬한 울릉도의 자연에서 우주 순환 원리인 ‘음양오행(수·목· 화·토·금)’을 발견했다. 모든 코스는 오행이 서로 돕고 살아가도록 하는 ‘상생’의 흐름에 따라 배열되어, 식사를 통해 대자연의 순환을 경험할 수 있게 차려진다. 지역 농가와 어부, 리조트 스마트팜 등 재료 출처를 세밀하게 전달함으로써 마치 울릉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도 선사한다.

 

<라 울>의 ‘음양오행’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 메뉴는. 금생수·수생목·목생화·화생토·토생금으로 오행의 흐름에 따라 코스를 제공한다. 그중 ‘수 생목-라 울의 밭’은 울릉도 바람을 맞고 자란 채소의 생명력을 담은 샐러드다. 구운 올리브와 버섯을 곱게 갈아 흙의 질감을 표현하고, 신선한 채소에 따뜻한 에멘탈 치즈 드레싱을 곁들였다.

 

‘목생 화’는 울릉도 오징어에 럼을 사용한 플람베 기법 으로 깊은 불 향을 입히고, 구수한 된장 크림 보리 리소토와 훈연 양파 파우더를 곁들여 진한 풍미를 완성했다. 메인 요리인 ‘화생토’는 울릉도 약초를 먹고 자란 약소의 채끝 등심 스테이크다. 여기에 산나물 페스토, 익힌 독도새우, 새우껍질로 만든 비스크 젤, 명이장아찌와 울릉도 더덕 테린을 층층이 레이어링하여 울릉도의 땅과 바다가 만드는 맛의 텍스처를 느끼도록 설계했다.

 

 

험준한 지형 특성상 식재료 수급이 까다로울 것 같다.

 

울릉도의 날씨와 지형은 인간에게는 도전이지만, 식재료에게는 축복이다. 깊은 바다의 감칠맛을 품은 독도새우와 도미, 척박하지만 강인한 토양에서 자라는 산나물과 더덕 등 계절마다 식재료의 얼굴이 변화무쌍하다. 재료 자체의 특성을 지키기 위해 자극적인 양념은 배제하고, 섬세함, 신선함, 맑은 풍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식재료 출하량이 일정하지 않을 때가 많지 만, 지역 농가 및 어부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계절 변화에 따라 메뉴를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잎채 소나 허브류는 자체 스마트팜에서 직접 재배해 안정적으로 수급한다.

 

섬세한 요리는 그에 준하는 페어링도 중요할 것 같다.

 

주류 역시 요리와 상생하며 조화로운 동행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무거운 와인보다 는 기분 좋은 산도와 미네랄을 지닌 서늘한 지역의 와인을 중심으로 샴페인, 화이트 와인 2종, 레드 와인 1종 구성의 페어링을 제안한다. 또한 울릉도 특산물인 호박과 부지깽이, 마가목을 활용해 리조트 전용 레시피로 빚은 프리미엄 막걸리를 식전주로 제공한다. 은은한 산미와 가벼운 알코올 밸런스로, 코스의 첫 장을 부드럽게 열어준다.

 

울릉도를 방문할 여행객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은. 송곳산 일대의 경관과 청정 해안, 나리 분지 북쪽에 위치한 천연 지하수의 주요 원천인 용출수 등 섬이 품은 자연 그대로의 매력을 경험 해보길 바란다. 용출수는 어떤 오염도 되지 않은채 약 31년 동안 천천히 정화된 뒤, 추산 아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오른 귀한 자원이다. 리조트 객실 내 식수, 인피니티 풀이나 객실 자쿠지에도 이용출수를 사용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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