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는 동네 주민이 삼삼오오 모여 한국 식재료로 빚은 술을 나눠 마시는 사랑방 같은 양조장이 있다. 주방장 양조장이 그 주인공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전이 특별한 놀거리가 없고 색깔이 두드러지지 않는 도시라고 말한다. 대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런 반응에 ‘놀기’ 좋지 않은 도시일진 몰라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덕에 ‘살기’ 좋은 도시라고 답한다. 주방장 양조장의 김하진·이은호 공동 대표가 대전에 자리 잡은 것도 어릴 적 살던 고향의 모습 그대로 동네 주민과 일상을 나누며 하루하루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심한 듯 향기가 풍부한 그들의 술은 어딘가 대전과 닮아 있다.
동네 주민과 함께 성장한 양조장
주방장 양조장의 두 대표는 해외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다. 당시 술과 요리에 관심 있던 김하진 대표, 홍보와 콘텐츠에 흥미 있던 이은호 대표는 같은 대전 출신인 데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공통점을 깨닫고 서로의 관심사를 결합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김하진 대표가 캐나다 호텔의 주방장 출신이라는 점과 고서 「주방문 酒方文」에 착안해 명명한 지금의 주방장 양조장이 그것이다.

2019년 양조장과 비스트로를 겸한 공간으로 오픈해 손님에게 페어링 음식을 대접하고, 막걸리 빚기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한국 술 문화를 전파했다. 두 대표는 이때 만난 지역민들의 피드백이 큰 기쁨이자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점차 주문량이 늘어나면서 양조에 집중하기 위해 2022년부터 양조장만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도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지역 주민만을 위해 술을 판매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유다.
한국 고유의 식재료로 빚어낸 개성
주방장 양조장이 선보이는 제품은 2가지. 대전 유성구에서 재배한 한국 배, 멥쌀로 만든 ‘배여유’와 어린 봄쑥인 애엽을 활용한 ‘쑥크레’다. 쑥크레는 비스트로를 찾는 외국인 손님들이 한국적인 식재료를 넣은 요리에 특히 관심을 보이며 거부감 없이 먹는 데서 가능성을 엿보고 시작했다.

종류마다 향과 맛이 다른 쑥의 품종과 배합을 달리해 시제품을 만들고 손님들의 피드백에 따라 수정한 끝에 8번째 배치에 이르러 지금의 레시피를 완성했다. 부재료의 명확한 지역성과 요리에 두루 페어링하기 좋은 맛이라는 장점 덕에 국내 여러 레스토랑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캐온 쑥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계약재배를 통해 질 좋은 쑥을 공급받는다.
술이 완성되고 이은호 대표의 콘텐츠화 작업이 시작됐다. ‘한국 술은 고리타분하다’는 오해나 ‘막걸리는 페트병에 담긴 값싼 술’이라는 편견을 깨고 파인 다이닝에서 소믈리에가 서비스할 만한 고급 술로 인식되길 바라면서 디자인에 가장 신경 썼다. 레스토랑에서 일상적으로 선보이는 와인병, 그중에서도 어깨 부분이 매끈한 부르고뉴 와인병을 닮은 유리병을 선택한 이유다.
향이 잘 느껴지는 작은 와인 잔이나 술의 옅은 회색빛이 잘 보이는 백자 잔에 맑게 뜬 청주만 담아 먼저 맛보고, 이후 병을 흔들어 한 번 더 따라 마시면 청아한 쑥 향과 달콤쌉싸름하고 진한 쑥 향을 제대로 음미하기 좋다. 국내 파인 다이닝 중 가장 먼저 쑥크레를 주류 리스트에 올린 <레스토랑 주은>의 김주용 소믈리에는 “포도, 리치 등 싱그러운 과일 향과 상큼한 산도, 은은하고 섬세하게 다가오는 쑥 향이 훌륭하고 도다리쑥국, 어만두 등 담백한 요리와 페어링이 좋을 뿐 아니라, 유려한 병의 모습 덕분에 파인 다이닝에서 내놓기에 전혀 손색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역민과 더불어 사는 양조장을 위해
양조장이 부쩍 성장하고 있는 요즘, 두 대표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오픈 당시 소규모주류제조면허를 받았는데, 허가를 받은 공간의 규모로는 더 이상 주문량을 소화하기 어려워졌다. 작은 규모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반대로 작은 규모에 머물러야 한다는 제약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넓은 장소로 이사할 수도 있지만 주문량이 계속 늘어난다면 그 또한 임시방편이기에 더 큰 규모를 허용하는 지역특산주면허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특산주면허는 인근 지역의 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주방장 양조장은 이미 대부분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다. 두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규모의 확장이 아니다. 양조장이 홀로 커지기보다 지역민과 함께 넓어질 수 있도록 비스트로를 다시 운영하는 것이다. 김하진·이은호 대표는 자신들이 만든 술, 자신들이 서비스하는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는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 사람들이었다.
자료 제공 : 바앤다이닝 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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