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매거진 편집부의 모습을 그린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에서 주인공은 부편집장에게 “기술은 보고 훔치라잖아요!”라고 당차게 말한다. 일상 속에도 관심을 갖고 보면 기획자, 마케터의 영혼을 갈아 넣은 훔치고 싶은 문구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온전한 의미의 창작은 없다고 하듯이 좋은 문장을 보고 받은 영감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카피를 탄생시키는 방법을 뉴욕삼합의 현병욱 대표가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지구보다 큰 생각 화성시. 동탄신도시 동탄북광장에서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16년째 셀카 중인 뉴욕삼합의 현병욱입니다.
매장에서 사용되는 카피 쓰는 일이 좋아 꾸준히 하다 보니 저만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카피를 만들 때 그냥 훔치면 됩니다. 대신. 조금 바꿔보세요.
패러디라고 하죠? 도둑놈이 아니라 패러디를 하는 것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입니다.
셀카?
셀프 카피라이팅을 줄여서 셀카입니다.
16년차 자영업자의 셀프 카피라이팅.
유명인의 말을 훔쳐 오세요.
에어컨을 새로 장만해 매장이 시원해졌다는 것을 손님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조금 다른 표현으로 알리기 위해 [제2편]에서는 북극곰을 등장시켰습니다.
남북평화의 모드가 무르익던 그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 위원장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유명한 발언이 있습니다. "어렵사리 멀리서 평양에서 냉면을 가져왔습니다. 아~ 멀다고 하면 안 돼갔구나. 가깝다고 해야디." 대한민국을 평양냉면의 열풍에 빠뜨렸던 발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들었을 법한 이 말을 훔쳐봅시다.
에어컨을 샀고. 엄청 시원해졌다.
이 두 가지 말을 훔쳐 온 말에 넣어봅니다.
"에어컨을 한 대 더 설치하고 보니 고깃집이 왜 이리도 시원한가. 시원하다 하믄 안 돼갔구나. 춥다고 해야디."
이렇게 바꾸는 겁니다. 이렇게 했다고, 국정원에서 저를 잡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저를 향해 책상 위의 단추를 누르지는 않을 겁니다.
속담을 훔쳐 오세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다."
속담은 지혜와 경험 그리고 공감이 농축된 문장입니다. 속담을 들으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 그 말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속담 한 줄로 설명이 됩니다.
식당에서는 '맛있다'를 표현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맛있다'하면 떠오르는 속담을 훔쳐 오면 됩니다. 맛과 관련된 속담 중에 누구나 알 법한 속담이 있습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었어. 왜 죽었을까?
스나이퍼가 숨어있다가 저 멀리서 음식을 먹었을 때 방아쇠를 당겼을까? 누가 음식에다 독을 넣었을까? 옆사람이 죽어도 모를 만큼 빠져서 먹었다는 뜻이겠지?
음식을 먹다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은 이유는 뭘까?
이런 궁금증이 의미가 있을까요? '너무 맛있다'라는 것을 표현하는 속담이라는 것을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는 맛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은 이미 '맛있다'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훔쳐 옵시다.
그냥 쓰기에는 조금 민망하죠? 살짝 바꾸면 됩니다. 속담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원조 논란, 저작권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게다가 누구나 알고 있으니 상대방이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심봤다." 외치면서 훔쳐 옵시다.
유행어도 훔쳐 옵시다.
기왕에 훔쳐 오는 거. 요즘 유행하는 말도 하나 훔쳐 옵시다. 티비를 틀거나 유튜브를 봐도 먹는 방송 천지입니다. 먹는 방송을 줄여서 먹방이라고 합니다.
먹방은 더 이상 우리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외국에서는 먹방을 그대로 영어로 바꿔서 mukbang이라고 씁니다.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고역이 없습니다. 맛없는 음식은 많이 먹을 수 없습니다. 음식을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먹는 방송에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도 숨어있습니다
먹방을 보면 맛있게 아주 많이 먹습니다. 이 정도 표현으로는 조금 약하죠?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맛있게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먹습니다.
먹방 '맛있는 음식을 정말 정말 많이 먹는다.'라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우리 식당의 음식을 먹방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뒤도 돌아보지 말고 훔칩시다.
상투적인 표현도 훔쳐 옵시다.
예전 영화 포스터에 보면 늘 빠지지 않는 상투적인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절찬 상영 중" 열심히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인기가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와 같은 말은 전혀 없는데도. 들어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절찬 상영중"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은 '우리 식당은 음식을 팔고 있습니다'처럼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느낌이 뭔가 다릅니다.
절찬리에 상영 중인데 나만 안 보면 바보가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나만 유행에 뒤떨어지는 느낌입니다. 나만 손해 보는 느낌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은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지만. 나만 손해 보는 것은 이를 악물어도 참기 힘듭니다. 어차피 훔치기 시작한 것. 이 상투적인 표현도 훔칩시다.
그래도 양심이 있지.
식당은 '맛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직접적으로 표현했다가는 "얼마나 맛있나 보자."와 같은 역효과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둘이 먹다가 왜 하나가 죽어?" "그 속담도 모르냐? 맛있으니까 그렇지." 질문에 대해 상대방은 답을 합니다.
질문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속담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속담을 조금 바꿔서 쓰면 식당에게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 형식으로 바꿔봅니다.
'둘이 먹다 하나는 왜 죽었을까?"
분명 상대방은 "맛있으니까"라고 대답하겠죠?
아무리 훔쳐 왔어도. 그래도 양심이 있지. 훔쳐 온 것을 그대로 쓰기에는 조금 찔립니다. 조금 바꿔서 써야겠습니다. 또 바꿔서 쓰는 게 훨씬 효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훔친 것 싹 다 모아서 섞어봅시다.
'둘이 먹다 하나는 왜 죽었을까?" '먹방' '절찬 상영 중'
세 개를 훔쳐 왔습니다. 어디 한번 잘 섞어볼까요?
'둘이 먹다 하나는 왜 죽었을까? 절찬 먹방중.' 그럴듯한 카피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이걸 써먹겠습니다.
열려라 참깨 소금!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은 그들이 훔친 보물들을 그들만이 아는 동굴에 숨겨두었습니다.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과 함께 동굴 문이 열리면 동굴 가득한 금은보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차피 도둑놈들이 훔쳐 온 물건입니다. 그걸 다시 훔쳐 옵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고요. 우리가 아는 동화의 이야기입니다.
카피를 만들어야 하는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게 동굴과 같은 그러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배달의민족' 홈페이지입니다. b급 감성을 표방하는 배달의민족의 광고와 카피에는온갖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배달의민족도 광고나 카피를 만들 때 여기기서 훔쳐다가 살짝살짝 바꿔서 만듭니다.
그렇게 훔쳐서 만든 광고와 카피들을 홈페이지에 가득가득 담아둡니다. 거기에다가 자신들이 개발한 글꼴들을 공짜로 나눠줍니다.
제가 훔쳐서 힘들게 만들어 놓은 카피를 배달의민족 홈페이지에서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먼저 만들었는지. 배달의민족이 먼저 만들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만 먼저 쓰면 장땡입니다.
배달의민족 홈페이지를 구경하다가 보면 '나나 너나 도둑놈들 하는 생각이 똑같구나'싶다 가도 '진짜 도둑놈은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자. 우리 모두 훔치러 갑시다. 어차피 배달의민족도 훔쳐 온 건데 어떻습니까? 서로 훔치고 훔칩시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문을 외우며 훔치러 갑시다. "열려라 참깨"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조금 바꿔서 씁시다.
"열려라 참깨 소금"
경찰 아저씨 얘 다 훔쳐 왔어요.
훔쳤다는 표현. 고상한 표현으로는 모방이고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는 패러디입니다. 기존의 있던 표현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새로운 카피가 만들어집니다. 몰래 훔치지 말고 어깨 펴고 당당히 훔쳐서 카피를 만들어보세요.
누군가를 당신이 훔쳐서 만든 카피를 보고 웃으며 박수를 쳐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겁니다.
"경찰 아저씨 얘 다 훔쳐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