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라이프]포르투갈을 감각하다

  • 등록 2019.08.24 11: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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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에 반하다

흔히 통조림 하면 그렇고 그런 저장 음식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통조림은 각별하다.

프랑스 브르타뉴 출신의 업체가 1백60여 년 전 시작한 것으로 추정, 1925년에는 제조 업체만 4백여 개로 늘어나 절정을 맞이하며 내수경제를 톡톡히 책임졌다.

 

현재는 내수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불과 20여 곳만 남았지만 전통과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더욱 다양한 종류의 고품질 통조림을 세련된 디자인에 담아내며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포르투갈의 역사와 감성을 녹여낸 통조림 전문 숍에 눈으로 반하고, 통조림을 활용한 근사한 요리로 입이 반한다.

 

대항해 시대를 기리다 코무르

2016년, 창립 75주년을 맞아 리스본에 브랜드 숍을 오픈하면서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을 마쳤다. 5백여년 전 대서양을 누빈 바다의 영웅들을 그려 넣은 ‘대항해 시대 서사 컬렉션’이 그것. 매장 안에 설치한 배 모형과 비밀 금고에 한정판으로 만든 금괴 모양의 통조림을 가득 쌓아 포르투갈의 황금 시대를 흥미롭게 표현했다. 정어리, 황새치, 문어, 훈제 홍합, 전갱이 등 20여 종의 해산물 통조림과 파테도 있다.

 

 

통조림 놀이동산 문도 판타스티코

알록달록 빛나는 조명에 이끌려 발견한 이곳은 리스본에 놀이동산 콘셉트로 꾸민 통조림 가게다. 종류는 오직 정어리 하나지만, 파티마에서 세 목동 앞에 천사가 나타났다고 기록된 1916년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연도별로 숫자를 새겨 넣은 디자인과 다양한 컬러 덕에 기념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통조림 제조업체 하미레스

1853년부터 5대에 걸쳐 해산물 통조림 제조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어업 방식을 고수한다. 대표 브랜드 ‘하미레스’ 외에도 프랑스 인상주의 여류 작가 베르트 모리소를 모티프로 한 ‘베르트’, 우아한 장미 레이블의 ‘라 로즈’ 등 저마다 스토리텔링을 갖춘 16개 브랜드를 생산하며 수출 시장의 다양한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라브라 지역에 위치한 박물관 겸 숍을 방문하면 초기 디자인, 정어리 머리를 제거하는 데 사용한 첫 번째 기계의 프로토타입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인테리어가 된 통조림 파브리카 다스 잉기아

파스텔 톤 하늘색 위에 붉은색으로 숫자 1942를 새긴 통조림을 진열장에 가득 메우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인테리어가 됐다.

직관적이면서도 앤티크한 디자인은 2016년 리스본 코메르시우 광장과 피게이라 광장을 잇는 최대 번화가에 브랜드 스토어를 열면서 완성했다. 1942년부터 오로지 장어 통조림만을 생산해왔다. 해바라기 오일, 비니거, 향신료, 마늘 소금에 마리네이드한 장어를 바게트 빵에 올리기만 해도 근사한 타파스가 완성된다.

 

 

이토록 우아한 통조림 캔 더 캔

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인 리스본 코메르시우는 먹고 마시거나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로 늘 활기차다.

과거 주차 용도 정도로만 쓰이던 텅 빈 공간을 2012년 리스본 관광협회에서 개편하면서 이터리들이 들어서고 지금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그때 함께 오픈한 <캔 더 캔CAN THE CAN>은 통조림을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벽면을 가득 메운 캔들이 마치 통조림 박물관에 온 듯하고 3천 개의 빈 캔으로 만든 샹들리에는 감각적으로 반짝인다.

 

요리만 보면 통조림을 쉬이 떠올릴 수 없다. 연둣빛 과카몰리를 곁들인 정어리 튀김에는 차가운 가스파초를 페어링해주고, 우니와 해초, 아몬드의 조합에 콜리플라워 퓌레를 둘러 완성한 접시에서는 우아함마저 느껴진다. 신선함이 생명인 줄로만 알았던 우니를 통조림으로 만나니 색달랐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오너 빅토르 비센트VICTOR VICENTE의 통조림을 향한 새로운 시각과 세계 각국을 경험한 미겔 라판MIGUEL LAFFAN 셰프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포르투갈에서 생산하는 고품질 통조림이 뚝딱 먹는 인스턴트 식품이나 캠핑 푸드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쉬웠던 것.

 

 

단순한 사업이 아닌 포르투갈 문화의 한 축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오너는 18명의 로컬 셰프와 아티스트들이 통조림을 모티프로 완성한 작품을 실은 아트 쿡북을 출간하기도 했다. 웹페이지(canthecan.net)에는 레스토랑 소개뿐만 아니라 앤티크숍과 컬렉터, 박물관을 돌아다니면 사진과 기사, 오래된 캔들을 열심히 모아 ‘웹 박물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골목마다 술이 흐르다

쨍한 산미의 그린 와인, 전통 체리주 진지냐, 도루강변에서 즐기는 포트. 술 한잔이면 포르투갈의 도시와 사랑에 빠질 이유는 충분하다. 시인 존 키츠는 술이 행복한 자에게만 달콤하다고 말했지만, 이곳에서는 술이 인생을 달콤하게 해주기도 한다.

 

체리 익는 마을 오비두스

‘성채’를 뜻하는 오비두스OBIDOS는 성곽에 둘러싸인 작고 예쁜 마을이다.

리스본에서 서쪽 해안가를 따라 1시간가량 달리면 당도한다. 알폰소 2세가 우라카 왕비에게 결혼 선물로 바치면서 ‘왕비의 도시’라는 로맨틱한 별칭도 가지고 있다.

 

 

노랑, 파랑 화사한 원색을 입은 벽을 따라 작은 가게들이 걸음걸음 늘어서있는데, 베이커리, 바, 디자인 숍 등 너나

할 것 없이 팔고 있는 것은 바로 포르투갈 전통 리큐어 진지냐GINJINHA. 진자베리라는 포르투갈 체리로 빚은 술로 전역에서 만나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 초콜릿 잔에 담아 팔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1유로 정도의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기는 달콤함. 한 잔 두 잔 먹다 보면 어느새 마을 끝에 닿아 있다.

 

그중 꼭 맛봐야 할 곳은 바 <IBN 에릭 렉스IBN ERRIK REX>. 마을을 통틀어 딱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지냐가 있기 때문이다. 진지냐의 빅 팬이라는 로컬 사람에게 추천받아 찾아갔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고 마침 청소를 하러 나온 주인장에게서 한 병 사들고 나왔다. 골목을 걸으며 다른 가게의 것을 맛보는 동안 그들조차 이 바의 진지냐를 ‘포르투갈 내 최고’라고 인정해버린 정도다.

 

 

힙하고 쿨해지는 리스본 와인신

스페인 마드리드와 독일 베를린. 흔히 유럽의 힙한 밤 문화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두 도시다. 이제 그 대열에 리스본이 합세한 듯하다.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세계 전역에서 모여든 소위 ‘놀 줄 아는’ 젊은이들이 골목골목 도시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지금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3-4년 전부터다. 와인이 일상화되어 있어 오히려 이렇다 할 비스트로가 없었던 도시 곳곳에 퀄리티 있는 타파스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세련된 비스트로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것.

 

 

그 선봉에 섰던 <바이 더 와인BY THE WINE>은 독특하게도 오직 ‘호세 마리아 드 폰세카JOSE MARIA DE FONSECA’의 와인만 취급한다. 1834년 설립되어 7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 나가고 있는 포르투갈의 명망 높은 와이너리로 덜 성숙한 어린 포도로 만들어 쨍한 산미가 매력있는 비뉴 베르드, 중저가 테이블 와인부터 프리미엄 와인, 포트 와인까지 이들의 모든 와인을 이곳에서 글라스나 보틀로 맛볼 수 있다.

응당 와이너리에서 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겠거니 했는데, 그저 와이너리와 오랜 친분이 있었던 사업가이자 변호사인 히카르두 산투스RICARDO SANTOS가 새로운 콘셉트를 고민하던 끝에 오픈한 것이라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위치 선정도 꽤나 고심했는데, 북적이는 광장에서 벗어나 언덕으로 이루어진 작은 골목 ‘시아두CHIADO’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지역민들도 그저 지나치는 구역에 불과했던 시아두는 이제 이곳과 더불어 호세 아빌레스 셰프의 레스토랑, 칵테일 바, 디자인 숍까지 들어서며 로컬과 관광객 모두가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오크통을 연상시키는 아치형 천장을 빼곡히 채운 와인병이 화려하게 빛나고 키친을 마주한 바는 문을 열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들어찼다. 아무렇게나 널 브러져도 좋을 소파,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은 몇 시간이고 이곳에 머물고 싶게 만들었고 맛있는 음식은 덤, 아니 사실 오너 산투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간편하면서도 레스토랑 못지않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재료 수급부터 레시피 개발 과정까지 셰프와 꼼꼼히 의견을 나눈다고. 앞선 시선으로 골목을 활성화시킨 그는 생선 볼살, 돼지 귀, 코 등 특수 부위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두 번째 레스토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다음 리스본 여행에서 행선지 하나는 이미 정해진 셈이다.

 

 

도루강 따라 흐르는 포르투 와인

그래도 역시 포르투갈 하면 포트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와인 발효 중에 브랜디를 넣어 만드는 달콤한 포트 와인을 탄생시킨 건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이었다.

 

당시 무역이 단절되면서 영국 상인들이 자국으로 가져갈 와인을 도루강 주변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LA NOVA DEGAJA(이하 가이아) 지역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배로 한 달 넘게 운송하다 보니 와인의 변질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넣기 시작한 것.

 

이때 수출 항구였던 ‘오포르투’의 이름에서 포트 와인의 명칭이 유래했다. 최근에는 다른 나라에서 이 명칭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포르투 와인’이라 칭하는 흐름이 있기도 하다. 당시 저장고로 쓰이던 건물들은 대부분 기능을 잃고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가이아 지역은 그라함, 샌드맨 등 굵직한 포트 하우스가 자리해 있다.

 

 

도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주 삼아 밤이고 낮이고 포트 와인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중 테일러는 1692년 설립된 전통의 포트 명가로 업계 최초 엑스트라 드라이 화이트 포트 와인인 ‘칩 드라이 포트CHIP DRY PORT’를 개발하며 가장 전통적인 동시에 가장 혁신적인 포트 하우스로 평가받고 있다.

 

로버트 파커는 이곳의 빈티지 포트를 두고 ‘포트계의 샤토 라투르(1급 샤토)‘라고 극찬한 바 있다. 빈티지 포트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건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LATE BOTTLED VINTAGE(LBV)’. 마치 입안에서 과일 폭탄이 터지는 듯 강렬한 프루티함이 느껴졌다.

 

맛의 비결은 오크통이다. 숙성 과정에서 오크 향이 묻어나지 않도록 오래된 것들을 사용하는데, 새것처럼 반짝이는 오크통도 알고보면 수십 년 동안 포트 와인을 품었고 무려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사용하는 것도 있다.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바앤다이닝 블로그 : https://blog.naver.com/barndining

 

관리자 rgm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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