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35년 만의 변화 이뤄지나?

2020.07.22 09:00:51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꺼냈는데 뜯지도 않은 우유의 유통기한이 5일이나 지나 버렸다면 어떻게 할까? 보통 찝찝한 기분에 우유를 폐기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을 식품 폐기 시점으로 인식하고, 음식들을 즉각 폐기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통기한이 ‘식품 폐기 시점’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보관에 따라 유통기한이 지나도 섭취가 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각인된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 소비자들에게 유통기한은 여전히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한계 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식품의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바로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의 도입’이다.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역시 올해 말까지 식품에 표기되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전환하기 위해 열린 포럼을 개최하는 등 노력을 펼치고 있다.

 

유통기한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의 식품 유통기한 표시제는 1985년 최초 도입됐다. ‘유통기한’은 법령상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최종일’을 뜻한다. 이는 식품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판매자 중심의 표시제다. 정부입장에서는 식품의 안전한 유통과 관리를 위해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것이 보다 편리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품질유지기한’이란 개념도 있다. 이는 ‘식품의 특성에 맞게 적절한 보존방법이나 기준에 따라 보관한다고 가정했을 때, 해당식품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품질유지기한이 표기된 식품은 기한이 경과되더라도 유통이나 판매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로 김치류, 잼류, 레토르트식품 등에 품질유지기한 선택 표기가 허용됐다.

 

 

유통기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시대에 맞지 않는 표기제로 인한 낭비와 비효율’이란 한 줄로 요약된다. 지난 35년 동안 식품 제조기술이 향상되고, HACCP, GMP, GAP 등으로 대표되는 식품안전관리의 수준의 향상을 이뤘음에도 유통기한을 계속 사용하면서 자원 낭비와 사업 발달 저해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식약처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 중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폐기하는 소비자는 56.4%에 달한다. 모르겠다고 응답한 이들까지 고려한다면 10명 중 6~7명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폐기하는 것이다.

 

버리지 않는다고 응답한 33%의 응답자들 역시 식품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기에 폐기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유통기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습관으로 인해 수많은 자원낭비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환경부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음식 폐기물은 1인당 1일 0.28kg이 발생한다. 1일 총 발생량으로 환산하면 1만 5천 톤에 달하며, 연간 약 500만 톤의 음식 폐기물이 발생한다. 식량자원가치로 따지면 연간 20조원이 낭비되고 있으며, 폐기물의 처리비용만 8천억 원이 든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낭비다.

 

 

지난 2018년 7월 CODEX에서도 유통기한 표시가 소비자의 오인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식품 표시 규정에서 삭제했다. 현재 소비기한은 영국을 포함한 EU, 일본, 호주, 캐나다, 미국 등에서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소비기한이 없다는 이야기가 과언이 아닌 것이다.

 

소비기한 표기제, 무엇이 달라지나?

논쟁의 중심인 ‘소비기한’은 말 그대로 ‘식품을 소비할 수 있는 최종기한’을 뜻한다. 소비기한이 지나면 식품은 바로 폐기해야하며,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지금의 유통기한과는 달리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앞서 유통기한이 판매자 중심의 표기법이었다면 소비기한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표기법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4일 개최된 ‘식의약 안전 열린포럼’에서 최종동 식품표시인증과 식품표시광고정책 TF 과장은 소비자 혼란 방지 및 선택권 보장, 국제 조화와 안전을 기본으로 한 소비자 및 산업체 편익 증가를 중점 전략으로 판매자 중심 유통기한 표시제도에서 소비자 중심 소비기한 표시제도 도입을 올 연말 중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소비기한 표기제가 도입되면 기존의 유통기한이 표기되던 곳에 소비기한이 자리하게 된다. 초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병행 표기 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나,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듯하다.

 

기존의 유통기한은 표시된 저장조건(냉장, 실온 등)에서 설정실험(미생물 시험, 관능검사 등) 을 통해 산출된 부패시점 내에서 안전계수를 고려해 설정한다. 반면 소비기한은 보관조건 준수 시 일반세균수, 대장군균, 곰팡이 등 미생물 부패변화 검사를 실시해 유통기한 경과 후 섭취가능 일수를 산정한다.

 

 

때문에 소비기한이 적용되면 적절한 보관이 이뤄졌을 경우, 유통기한이 경과된 우유는 50일, 크림빵은 2일, 냉동만두 25일, 계란 25일, 식빵 20일, 생면 9일, 액상커피 30일, 슬라이스 치즈는 70일까지 섭취가 가능하다. 유통기한을 표기했을 때보다 오랜 기간 식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됐던 ‘섭취 가능한 음식물’들에 대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한 소비기한 등 일자표시제도 개선 정책 연구 결과, 소비기한 도입 시 식품폐기 비용에 있어 소비자는 3,000억 원, 업체 176억 원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보다 넓어진다. 소비기한을 적용하면 각 식품들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비교와 선택이 가능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같은 식품이라 해도 잔존 소비기한이 긴 식품들을 소비자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수입식품의 절대 다수가 소비기한을 쓰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유통기한을 쓰고 있어 그 동안 통관 시 많은 마찰을 빚어 왔다. 소비기한이 적용되면 향후 이런 국제통상 문제들도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비기한 도입,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소비기한 표기제의 도입은 긍정적이다. 당연히 바뀌어야 할 제도였고 장기적으로 봐도 그 것이 옳은 방향이다. 소비자 단체나 식품 업계에서도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모든 정책은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의 적절한 합의와 준비가 된 상태에서 진행해야 부작용이 적다.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신중함은 반드시 필요하다.

 

업계 입장에서는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 제품의 반품 및 폐기비용이 줄어들겠지만 식품의 색이 어두워지거나 침전물이 형성된 상품들이 진열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자칫 이런 문제로 특정 식품을 외면하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면 관련 업체들의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

 

 

현재도 여러 음료 포장지에는 침전물이 있을 경우 흔들어 섭취하라거나, 제품의 이상이 아니니 안심하고 섭취하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있다. 소비기한이 도입돼 보다 오랜 기간 식품이 진열 될 경우, 이러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사전 홍보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한 식품 소비기한은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식품 생산, 유통, 판매업자들의 명확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하다. 식품 소비기한이 지나지 않았다고 하여 어떤 조건에서 보관, 유통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관리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

 

 

소비자들 역시 해당 식품이 적절한 상태에서 보관된 것이 맞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구매할 수 있는 눈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에의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 식품의 소비기한을 맹신할 것이 아니라 식품 특성에 맞는 적절한 보존 및 유통 조건에 맞게 취급되고 있는지 정확한 관리와 판단이 필요하다.

 

정부는 제도 도입 이전까지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 및 소비 인식개선 및 올바른 식습관 지원을 위한 교육, 홍보를 실시하고, 기업들의 유통 환경 개선을 위한 냉장, 냉동 체계도 강화할 계획이다.

 

추가적으로 안정적 제도 도입을 위해 오는 9월 토론회, 간담회 등을 실시해 각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초기의 혼란은 있더라도 소비기한 도입은 이뤄져야한다. 정부의 이번 노력이 보다 안정적으로 소비기한 표시제를 연착륙시키길 기대한다.

남혁진 칼럼리스트 apollon_nhj@foodnew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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