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돌아온 우유구독? 구독경제를 대하는 식품외식업계의 자세

2020.06.10 13:00:48

‘우유 배달 사절’, ‘신문 넣지 마세요’

 

부모님이 종이에 적어 집 앞에 붙여놨던 문구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우유를 구독해본 가정이라면 구독 취소 요청을 받고도, 다음날이면 자연스레 넣어둔 우유 때문에 배달원과 실랑이를 벌이던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우유나 신문 구독이 필자가 기억하는 구독 서비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유 구독의 수준을 넘어 자동차까지 구독해서 기분에 따라 골라 타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른바 구독경제라 불리는 이 흐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더욱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주요 대기업들이 구독경제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상당 규모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추세다.

 

구독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시대

구독경제란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비용을 지급하고 원하는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송 받거나 일정 기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뜻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이다. 동영상과 음원 서비스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구독경제는 이제 스마트폰 사용자 중 대부분이 하나 이상 이용할 정도로 성장했다.

 

동영상과 음원으로 시작된 구독경제는 이제 식재료와 생필품, 미술 작품, 음료, 패스트푸드, 의류, 자동차 등 전 산업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언론사는 자신들이 만든 신문, 잡지, 영상 컨텐츠를 자체 어플을 만들어 구독자들에게 제공하며 추가 수익을 창출한다.

 

 

빨래를 할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은 셔츠를 구독해 매일 새 셔츠를 받아 착용하고, 차량 구독 서비스를 통해 감가와 수리비, 보험료 걱정 없이 원하는 차를 골라 타고 출근한다. 정말 ‘구독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시대’가 됐다.

 

구독경제는 크게 장소와 시간에 제약받지 않는 ‘무제한형’, 원하는 날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정기 배송형’, 이용 후 반납하는 ‘렌탈형’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월 구독료를 납부하면 무제한 또는 정해진 횟수만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제한형은 앞서 말한 동영상 및 음원 스트리밍 업체가 대표적이다.

 

 

대표적 동영상 구독 서비스인 넷플릭스는 최소 9,500원을 내면 영화와 TV프로그램 같은 영상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가입자는 5,700만 명 이상으로 이미 대세 영상 서비스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정기 배송형은 월 구독료를 받고 지정 주소로 정기배송을 해주는 서비스다. 과거에는 신문, 우유 등이 대표적이었다면 최근에는 면도날, 칫솔, 생수, 기저귀 등 생필품 정기 배송서비스가 크게 환영 받고 있다.

 

 

렌탈형은 비교적 고가의 제품이 해당되는 구독모델로 자동차, 전자제품, 명품 가방 및 의류 등이 해당된다. 대표적인 구독 서비스로 기아자동차의 ‘플렉스 프리미엄’을 들 수 있다. 플렉스 프리미엄은 월 단위 요금 129만원(부가세 포함)을 납부하면 K9, 스팅어,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매월 교체해 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렉스 프리미엄의 경우, K9을 타다 월 1회 변경을 통해 카니발 하이리무진으로 차를 바꿔 이용하는 등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편리한 모토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보험료, 수리비, 세금 등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이렇듯 구독경제는 소비자에게는 편의성과 폭넓은 선택권, 비용절감이라는 혜택을 준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매월 수익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 없이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가능한 모델이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 코로나19 사태 등 상황적인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앞으로도 구독경제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에 따르면 2000년에는 약 2,150억 달러(약 245조원)였던 구독경제의 시장규모는 2015년 4,200억 달러(약 470조원)까지 커졌다. 그리고 2020년에는 5,300억 달러(약 594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구독경제에 빠져드는 식품외식산업

식품외식업계도 이런 구독 경제에 적응하기 위해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해외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사례는 버거킹의 햄버거 구독 상품이다. 버거킹은 올해 햄버거 구독 서비스를 론칭했는데 이를 이용하면 햄버거 4개를 평소 가격보다 약 45% 저렴한 가격인 4,7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1월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매일 신선한 빵을 제공하는 ‘베이커리 월정액 모델’을 시작했다. 월 5만원 정액권을 구입하면 자사 베이커리 브랜드인 메나쥬리 매장에서 피자 바게트, 크리스피 갈릭 바게트, 모카 브레드 등 인기 제품 5종 중 1종을 매일 가져갈 수 있다.

 

 

스타트업 데일리 샷은 월 9,900원의 정기 구독료를 받고 회원들에게 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원들은 서울 강남, 신촌, 홍대, 이태원 등 핵심 상권 80여 곳의 펍이나 바에서 매일 한 잔의 술을 마실 수 있다.

 

술 종류는 수제 맥주, 칵테일 등 해당 매장이 지정하는 것으로 매일 변경된다.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시작한 이 서비스의 회원은 이미 5,000명을 넘어섰다. 업체들도 매주 2~3곳의 술집이 새로 가입하고 있다.

 

 

또한 동원홈푸드의 모바일 반찬마켓 ‘더반찬’은 3월부터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더반찬의 정기배송 서비스는 매일 다르게 구성된 식단 목록을 보고 소비자가 원하는 날짜의 상품을 일괄 선택해 주문하는 서비스다. 한 번에 최대 4주 분량까지 주문이 가능하며 배송은 당일 새벽에 받아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인의 밥상에 필수적인 김치까지도 구독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종가집은 온라인 쇼핑몰 정원e샵에서 김치 구독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구독자가 직접 김치의 종류와 용량, 배송주기를 지정해 원하는 날에 김치를 정기 배송 받을 수 있다. 이렇듯 현재 우리나라의 식품외식산업의 상당부분도 구독경제에 잠식당하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의 질과 소비자의 인식이다

구독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시작되어 대기업까지 이어진 현 흐름은 앞으로도 식품외식사업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만족도의 향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 중 가장 많은 25%가 ‘새로운 경험에 대한 흥미’로 인해 구독경제 형태를 가진 서비스를 구독했다고 응답했다. 새로운 시도, 편리한 서비스에 대한 흥미로 구독을 결정했다는 말이다.

 

 

이는 새로운 고객을 모으기에는 효과적이지만 서비스의 질과 만족도가 부족할 경우, 단기간에 고객들이 이탈 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구독 서비스들이 1~3개월 혹은 1년 단위의 결제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고, 구독 서비스의 특성 상 떠나간 고객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 만족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버거킹의 햄버거 구독 서비스만 봐도 구독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햄버거 4개를 절반 정도의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카피로 관심을 받았지만, 햄버거가 주식이 아닌 우리나라의 특성과, 제공되는 햄버거가 버거킹을 대표하는 와퍼가 아닌 단가가 저렴한 킹치킨버거라는 것이 알려지며 부정적인 반응이 쌓여가고 있다.

 

이런 반응이 장기화 되면 집 근처에 버거킹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굳이 버거킹의 햄버거를 구독까지 하며 먹으려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때문에 버거킹은 구독 서비스에 포함되는 버거의 종류를 늘리거나 관련 서비스에 대한 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구독경제가 유행하는 트렌드인 것은 분명하나, 국내 식품외식업계의 구독경제에 대한 인식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앞서 언급한 대기업과 일부 스타트업 기업 외에는 구독경제 도입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곳들도 많다.

 

이는 이미 커피, 라멘, 선술집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성공적인 구독 서비스 사례를 만들어 내는 일본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식품외식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민감하다. 하루에 세 번 혹은 그 이상 음식과 음료를 즐기며 살기에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를 보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그 관심이 식어버린다.

 

호기심에 시켜본 구독 서비스에서 큰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동결제 혹은 한 번에 결제하는 금액들이 부담으로 느껴질 것이고, 결국 소비자와 기업 모두가 윈-윈 할 수 있었던 구독경제가 가져온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남혁진 칼럼리스트 apollon_nhj@foodnews.news
Copyright FOODNEWS. All rights reserved.


PC버전으로 보기

식품외식경영 서울 강남구 학동로 18길 13, 2층(논현동, 청석타운빌) 발행인 : 강태봉 | 편집인 : 이 준 | 전화번호 : 02-3444-3600 Copyright FOOD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