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고급 일식당 ‘아오야마’는 서울 청담동에서 20년간 지역 명소로 자리를 지켜왔다. 오랜 시간 아오야마에서 정통 일본요리 카이세키(會席)를 책임진 이는 바로 40년 일식 외길인생을 걸어온 박범순 쉐프다.

박 쉐프는 97년 아오야마를 창업한 대표이기도 하다. 2016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아오야마 문을 닫고 현재는 전국을 다니며 일식당 메뉴 자문, 컨설팅을 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먹고 살기위해 시작한 주방일, 평생 업이 되다
1975년 만으로 18살이 된 청년 박범순에게 꿈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서울 데판야키(철판구이)&샤브샤브 전문점에 주방보조로 들어가 일을 배우며 외식업에 첫발을 디뎠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친 환경에서 선배들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
10년 정도 호텔, 일식당을 거치면서 실력을 쌓아온 박 쉐프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기회를 맞게 된다. 당시 외식 시장이 커지며 서울 강남 일대에 전문 일식당이 대거 들어서며 일식 전문 쉐프의 몸값이 높아진 것이다.

일식당에 근무하는 동안 견문을 넓히고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틈틈이 일본 연수를 떠나 카이세키 요리점을 다녔다. 이제는 자신 있게 이름을 걸고 가게를 열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97년 초 서울 청담동에 카이세키 요리전문점 ‘아오야마’ 문을 열었다.
뚝심으로 버텨 청담동 최고급 일식당 올라
야심차게 첫 창업에 나섰지만 같은 해 12월 IMF가 터지며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일식 중에서도 최고급 카이세키 요리를 선보이는 아오야마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문을 닫을 위기였으나 박 쉐프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뚝심으로 가게를 지켰다. 국내산지 직배송으로 횟감을 조달하고, 일본에서 공수해 온 화로에 송이버섯을 굽는 등 재료부터 요리 방법 하나하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6개월 정도 지나자 제대로 된 일식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으로 소문이 나며 기업인들의 주요 바이어 미팅, 회식으로 예약이 꽉 차기 시작했다. 계절에 따라 요리가 바뀌는 것에 맞춰 그릇과 내부 인테리어에도 변화를 줬다.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박 쉐프는 조리 과정에서 일절 MSG를 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자극적인 맛을 배제하고 천천히 미각을 집중해 음미하며 먹는 일식의 정수라 자부해왔다. 하지만 2016년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기업회식 문화에 변화가 생기며 매출 급감으로 가게를 정리해야만 했다.
후배들 위해 40년 일식 노하우 전수하고 싶어
박 쉐프의 앞으로 계획은 40년 넘게 현장에서 터득한 일식의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쉐프의 뒤를 잇고자 세계 3대 요리학교 츠지조리학교를 나온 아들과 함께 그동안 모아온 레시피 정리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범순 쉐프는 “일식은 기본이 중요한 요리다. 쉽게 맛을 내기위해 조미료에 의존하다 보면 결국 음식 맛이 흔들리게 된다. 기본이 탄탄한 다음 트렌드 맞춤 메뉴든지 리뉴얼을 해야 되는데 최근 외식업계를 보면 아쉬움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30년간 한·일 외식컨설팅을 해온 알지엠컨설팅과 뜻이 맞아 일식 전수 세미나 교육을 준비 중에 있다. 다시마다시, 니보시다시, 자완무시(계란찜) 등 기초부터 시작해 다양한 일식 레시피를 공개할 예정이다. 제대로 된 일식을 배우고 싶은 자영업자, 예비창업자가 어려운 외식시장에서 자생력 키우도록 아낌없이 노하우를 전수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