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만들고, 사람이 완성한 면의 이야기
같은 밀가루와 물로 만들어진 음식이 지역에 따라 이렇게까지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일식 셰프로 일하며 일본을 오가다 보면, 우동은 단순한 ‘면 요리’가 아니라 그 지역의 기후·생활·역사·사람의 성격이 응축된 음식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동들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필요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1. 사누키 우동 – “배부르게 먹기 위해 단단해졌다”
사누키 우동
● 단단한 면발로 우동의 기준이 된 사누키 우동
● 국물보다 면이 주인공인 우동의 원형
카가와현은 예로부터 쌀 생산이 넉넉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기후와 지형의 특성상 쌀 대신 밀 재배가 활발했고, 노동 강도가 높은 농촌과 항만 지역 특성상 오래 씹고, 포만감이 큰 음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누키 우동은 굵고, 단단하고, 씹을수록 힘이 있는 면발로 발전했다.

국물은 어디까지나 조연이다.
면이 주인공이기에, 가케우동이나 붓카케처럼 조리법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물은 최소한, 면은 최대한 사누키 우동의 핵심은 ‘면의 설득력’이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한 젓가락이면 충분하다.
2. 이나니와 우동 – “손이 많아질수록 면은 가늘어졌다”
이나니와 우동
● 수연 방식으로 완성된 가늘고 매끈한 이나니와 우동
● 씹기보다 목 넘김으로 기억되는 우동
아키타현은 눈이 많고, 겨울이 길다.
농한기에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 결과 발전한 것이 수연(手延) 방식의 이나니와 우동이다. 여러 번 늘리고, 말리고, 숙성시키는 과정 속에서 면은 점점 가늘고 매끈해졌다.

이 우동은 ‘씹는 맛’보다는 ‘목으로 사라지는 질감’을 완성한 면이다.
셰프로서 이나니와 우동을 보면 요리사의 욕심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양념을 더할수록, 이 면의 존재감은 오히려 사라진다.
3. 미즈사와 우동 – “신앙과 여행이 만든 담백함”
미즈사와 우동
●순례객을 대접하던 담백한 미즈사와 우동
●자극 없이 오래 남는 맛
미즈사와 우동은 군마현 미즈사와 관음 사찰을 찾는 순례객들을 대접하기 위해 발전했다.
그래서 이 우동에는 자극이 없다. 튀지 않는다. 하지만 불편함도 없다.
참깨 소스, 간장 베이스의 담백한 츠유.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무리가 없는 맛’으로 정리되어 있다.

튀지 않지만 불편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이 우동을 먹고 나면 “맛있다”보다 “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그 자체로 목적을 달성한 음식이다.
4. 고토 우동 – “섬이 만든 우동은 바다를 닮았다”
고토 우동
● 동백기름과 아고다시, 섬이 만든 고토 우동
● 바다의 환경이 녹아든 한 그릇

나가사키현 고토열도. 이곳의 우동은 태생부터 다르다.
면을 늘릴 때 동백기름을 사용한 이유는 단순하다. 면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보관성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바다를 건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국물에는 날치로 낸 아고다시가 사용된다.
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결국 그 지역의 ‘정체성’이 되었다. 고토 우동은 환경을 이길 수는 없지만, 활용할 수는 있다는 걸 보여준다.
5. 후쿠오카 우동 – “부드러움은 타협이 아니라 선택이다”
후쿠오카 우동
● 부드러움이 선택이 된 후쿠오카 우동
● 빠른 일상에 맞춰 완성된 하카타의 면
고토 우동과 함께 언급하고 싶은 것이 바로 후쿠오카 우동이다.
후쿠오카, 특히 하카타 지역의 우동은 일본 내에서도 유난히 부드럽다.

이유는 분명하다. 바쁜 상인과 항만 노동자들 짧은 식사 시간 바로 먹고, 바로 움직여야 하는 도시 그래서 면은 오래 씹지 않아도 되도록 의도적으로 부드럽게 삶아진다.
라멘의 도시로 알려진 후쿠오카지만, 현지인들에게 일상은 여전히 우동이다. 이 우동을 먹으며 나는 “식감의 완성도는 단단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6. 키시멘 – 형태가 맛을 바꾸다
키시멘
● 넓은 면이 국물을 품는 나고야의 키시멘
● 형태가 맛을 바꾸는 우동
나고야를 대표하는 '키시멘'은 넓고 평평한 면발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단순한 선택 하나로 면적이 넓은 만큼 국물이 잘 달라붙고, 가쓰오부시 향이 강한 나고야식 육수와 궁합이 좋다.
같은 밀가루 면이라도 형태가 식감을 완전히 바꾼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우동은 ‘지역 음식’의 교과서다. 일본의 우동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지역을 지켜왔다는 점이다.
물, 밀, 기후, 사람의 손길., 이 모든 것이 쌓여 지금의 우동을 만들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우동을 먹는다는 것은, 그 지역을 한 그릇으로 이해하는 일에 가깝다.
한국에서 우동을 해석하는 셰프의 고민
일본에서 우동은 일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우동은 여전히 ‘선택하는 메뉴’에 가깝다.
이 차이에서 셰프의 고민이 시작된다.
한국의 손님들은 우동에 명확한 맛, 납득할 수 있는 풍미, 그리고 한 그릇의 완성도를 동시에 기대한다. 반면 일본의 우동은 과감할 만큼 덜어내는 음식이다.
어떤 지역의 우동은 “이게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하다. 한국에서 우동을 그대로 옮기면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고, 한국식으로 과하게 손보면 우동의 정체성이 흐려진다.
그래서 나는 늘 이 사이에서 고민한다.
어디까지가 설명이고, 어디부터가 변형인가. 면의 식감은 유지하되 국물의 설득력을 조금 더 보완할 것인지, 전통을 지키되 먹는 맥락은 한국의 식문화에 맞출 것인지.
결국 한국에서의 우동은 재현이 아니라 해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이 만든 우동의 본질을 존중하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먹는 사람에게 “왜 이 우동이어야 하는지”를 한 그릇 안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균형을 찾는 과정 자체가 한국에서 일식 셰프로 우동을 만든다는 일의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