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은 한식, 그 얼굴이 점점 다채로워진다. 이제 한국 셰프들은 현지와 교감하며 한식의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다.
전통과 재해석, 유년의 기억과 현지의 미각,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 그들의 도전 속에서 한식의 오늘을 읽는다.

두바이에 한우 그릴의 매력을 전하다
하누 두바이 - 문경수 셰프
올 3월, 중동에 한우를 선보이는 최초의 한국식 그릴 다이닝이 두바이에 등장했다.
<하누 두바이>가 그곳. 두바이 ‘선셋 호스피탈리티’의 레스토랑으로, 그룹 컬리너리 디렉터 문경수 셰프가 2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오픈했다.
문경수 셰프는 신라호텔 <아리아케>에서 8년 수련하고 ‘부르즈 칼리파 알마니 호텔 두바이’, ‘싱가포르 페어몬트 호텔’, 호주 <키스메>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전 세계를 돌며 호텔 8곳, 레스토랑 40곳 오픈에 참여한 업계 베테랑이다.
20년 넘게 일식을 만들던 그가 한식으로 눈을 돌린 건 우연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세계 미식 시장에서 일식이 빠르게 성장했기에 일식을 만들어왔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한식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한식 세계화의 선구자인 임정식 셰프를 보며 ‘나도 언젠가 한식을 알리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한식을 전공한 심우춘 총괄 셰프가 이끄는 이곳에서는 한우를 중심으로 현지화된 한식을 만날 수 있다.
불고기 등 다양한 한우 메뉴를 테이블 위 숯불 그릴에서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다. 이 외에도 해물파전은 ‘시푸드 팬케이크’, 김치찌개는 ‘김치 스튜’, 잡채는 ‘웍 프라이드 글라스 누들’ 등 이름은 현지화했지만 한식의 맛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공간 한편에 마련된 바와 라운지에서는 오미자차와 자두를 활용한 ‘플럼 레모네이드’ 등 한국의 사계절을 보여주는 메뉴와 함께, 직접 만든 고추장을 넣은 ‘고추장 하이볼’, 호지차를 인퓨징한 보드카를 넣은 ‘서울 뮬’, 한국 배를 인퓨징한 리큐어를 활용한 ‘청 페어’ 등 한국 재료로 만든 칵테일을 만날 수 있다.
두바이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최근 중동에서 한식의 인기가 엄청나다. 중동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까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식에 관심을 보인다. 다만 한식의 수준은 그 인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한식당 메뉴판을 펼쳐 보면 꼭 일식이나 태국 음식이 섞여 있다. 또한 중식, 일식, 양식, 인도 요리 등 다른 아시아 음식점은 가격대와 퀄리티의 수준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데, 유독 한식은 캐주얼에 머물러 있고 운영체 계가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외식 문화가 발달한 두바이에 제대로 된 프리미엄 한식 다이닝을 통해 한식의 진가를 알리고 싶었다.
왜 한우였나.
한식의 고급화와 세계화를 위해 한우만 한 식재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간 중동 지역 국가로부터 할랄 인증을 받은 도축장이 없어 수출이 어려웠는데, 올 1월 횡성케이씨가 국내 처음으로 인증을 받았다. 횡성한우 UAE 홍보 대사로서 횡성군, 횡성축협과 협업해 <하누>에서 중동 최초로 한우를 선보이고 있다. 한식을 소개할 때 가장 신중하게 고려한 요소는.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한식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무슬림 문화권인 중동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 배제했다. 자격을 갖추고 정부에 신고하면 판매가 가능하지만, 최대한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싶었다. 베지테리언 고객을 고려해 전통 김치와 멸치 액젓을 넣지 않은 비건 김치를 함께 준비한다. 또한 청결을 예의이자 신앙의 일부로 여기는 문화가 있기에, 손님들이 갖춰 입은 전통 의상에 고기 등 음식 냄새가 배지 않도록 환기와 배기 시스템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현지 입맛에 맞는 한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오픈 첫 달에 기본 레시피에 따라 만든 한식이 너무 맵다는 평이 많아 맵기를 2단계 정도 낮췄다. 본래 한식과 현지 입맛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한 시간이었다.
메뉴를 소개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은. 이해하기 쉽도록 현지 문화에 비유해 소개한다. 중동 지역에서는 병아리콩 페이스트인 후무스를 빵이나 채소에 찍어 먹는데, 쌈장을 맵고 칼칼한 콩 페이 스트로 소개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또한 고기를 먹은 후에 된장국 한 숟가락을 먹도록 안내하는 데, 먹고 나서 개운한 감탄사를 내뱉는 현지인을 보며 한식의 매력을 전달했다는 기쁨을 느낀다.
인테리어에 반영된 한국적인 요소를 소개한 다면.
공간 중앙에는 한국 소나무를 배치해 서울의 정원에 온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대들보 천장, 청동 문, 겹겹이 쌓은 기와, 전통 목각, 청자 펜던트 등 한국 문화유산의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야외 테라스에는 김치 항아리와 전통 문양의 병풍을 두었다.
한식이 중동에서 일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아랍 문화가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이곳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한식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들지 않을까.
앞으로의 목표는.
2026년 안에 싱가포르와 베트남에 지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하누 두바이> 가 중동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프리미엄 한식을 알리는 대표 브랜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 Hanu Dubai
- St.Regis Gardens, Palm Jumeirah, Dubai, UAE
홍콩 미식 중심지에서 한식을 말하다
오름 - 최준우 셰프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밀집한 홍콩의 웰링턴 스트리트. 지난 8월, 그곳에 새로운 한식 레스토랑 <오름>이 등장했다. 최준우 셰프는 영국 <진주>, 태국 <가간>, 홍콩 <빕 앤 홉> 등 세계 곳곳의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로, 한국식 주점 <오비피 OBP> 총괄 셰프를 지내며 홍콩 다이닝 신에 이름을 알렸다.
<오비피> 가 한국 포차 문화를 조명했다면, <오름>은 모던 코리안 타파스를 선보인다. 김부각과 캐비아를 곁들인 육회, 무와 깻잎을 넣은 게살 김밥, 캐러멜라이즈드 김치와 들기름을 곁들인 메밀국수 등 한식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여기에 홍콩 유일의 한국 주류 수입사 ‘케이브 Kave’의 고성찬 대표와 협업한 한국 술 중심의 주류 리스트를 마련했는데, 유자 막걸리, 소주, 코리안 내추럴 와인 등 60여 종의 한국 주류와 전통주 베이스의 칵테일까지 다채롭다.
홍콩에서 한식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뜨겁다. 일례로 주홍콩한국문화원에서 매달 한식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는데, 반응이 매우 좋다. 홍콩의 한우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어 레스토랑 밖에서의 반응을 체감할 때가 많은데, 한식이 해외에서 ‘통한다’는 느낌이 즐겁고, 행복하고, 통쾌하다.
홍콩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2015년 홍콩에 처음 왔을 당시, 한식당은 고깃집이나 치킨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2020 년도부터 ‘한식은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관심이 부쩍 커졌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 하듯, 최근 2-3년간 다양한 콘셉트의 한식 다이 닝이 오픈 중이다. 저 또한 지난 10년간 쌓아온 홍콩 미식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식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공간에 도전하고 싶었다. 1 년간 시장조사를 하며 홍콩 미식의 중심지라고 할수 있는 센트럴에 자리 잡았다.
현지에 한식을 소개할 때 가장 신중하게 고려한 요소는.
한식의 철학과 한국 문화를 지키는 것. 장류에서 비롯되는 전통의 맛과 정갈함을 통해 한식의 건강함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또한 한국의 정 情을 담은 따뜻한 환대 문화를 조성하고 있는데, 현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정을 담은 환대 문화란 무엇인가.
정해진 포션보다 단체 손님의 구성원 수가 많으면 그만큼 더 얹어주는 것, 궁금해하는 한국 술은 어떤 종류든 테이스팅하게 해주는 것. 아낌없이, 하나라도 더 내주려는 인심이 한국의 정이 아닐까 싶다. 메뉴는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나. 제가 가진 한식의 기억을 먼저 떠올리고, 홍콩에서 구할 수있는 한국 재료를 중심으로 개발한다. 이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하는 손님 입맛에 맞을지 테이스팅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대표 메뉴를 소개한다면.
‘김부각 육회’와 ‘간 장 새우장’은 안주를 타파스 스타일로 풀어낸 대표 메뉴다. 먼저 ‘김부각 육회’는 하루 동안 말려 튀겨낸 한 입 크기의 김부각에 다시마와 말린 표고 버섯 등으로 에이징한 육회 간장 소스를 곁들인다.
여기에 직접 만든 와사비 마요네즈, 감태, 캐비 아를 올려 감칠맛을 끌어낸다. ‘간장 새우장’은 양념 베이스에 숙성한 몸통과 껍질을 벗겨낸 통새우 머리를 감태 버터라이스 위에 올린 메뉴. 대추, 인삼, 건표고버섯, 팔각 등을 서서히 졸여내고 이틀간 숙성한 맛간장이 포인트다. 마지막에 새우장 에센스를 몇 방울 떨어뜨리며 요리 방식과 역사를 소개한다.
그간 거쳐온 레스토랑에서 영감받은 메뉴도 있나.
2018년 <가간>에서 스타주를 하며 가간 아난드 셰프의 독창성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중 ‘로즈’는 무와 비트를 얇게 썰고 말려 꽃잎 모양 으로 만든 후 예쁘게 색을 입힌 요리로, 식재료 하나하나에 쏟은 정성과 손님의 기대에 찬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제주 용두암을 연상시키는 시그너처 메뉴 ‘김부각 육회’가 당시 아기자기한 요리를 만들며 오래 구상한 메뉴다. 주디 주 셰프의 <진주> 는 다양한 스타일의 모던 코리안 요리를 통해 홍콩에 새로운 한식을 소개한 레스토랑이다. 한식을 재해석하는 방법, 그리고 아름다운 플레이팅 방식을 배웠다.
맛 표현을 한국어 그대로 사용하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편이다. 청량함은 제주도에 도착 했을 때의 공기, 쿰쿰함은 산기슭의 습기 찬 이끼, 슴슴함은 절밥에 비유해 이미지를 그릴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한국 술 중심의 주류 리스트를 마련한 계기는.
소주와 맥주만 떠올리던 과거와 달리, 최근 막걸리를 중심으로 한국 술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신선하고 달콤한 고흥 유자주, 섬세하고 우아한 서설청주, 감칠맛이 좋고 밀키한 질감의 백련 미스티 막걸리 등 한국 술의 다양한 맛과 향, 질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예상 밖의 반응은.
홍콩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인보다 더 좋아하는 현지인이 꽤 많아 놀랐다. 현지인 입맛에 맞는 매운맛의 단계를 차차 찾아나 가고 있다. 또한 영어나 중국어로 메뉴를 설명했 는데 한국어로 대답하는 손님도 많다. 점점 커져 가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에 자부심을 느낀다.

인테리어에 반영된 한국적인 요소를 소개한다면.
바깥 파사드는 한지의 텍스처와 기생화산을 연상시키는 나무 프레임으로 꾸렸다. 인테리 어는 회색 기왓장을 중심으로 모노톤을 이루고, 한국 아티스트의 오브제를 곳곳에 배치했다. 특히 예술 작품을 모은 ‘아트 월 사이드’를 포인트로 꼽고 싶다. 이나영, 윤형택 등 한국 작가의 작품과 한국의 은은한 색채를 지닌 소품으로 장식했다.
한식이 홍콩에서 일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외식 문화가 발달한 홍콩에는 매우 다양한 식문화가 공존하는데, 서비스가 다소 건조한 레스토랑이 있다. 한국의 ‘정’을 기반 으로 따뜻한 환대 문화를 조성한다면 한식의 경쟁 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세계에 한식을 알리고 싶은 셰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 한식은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보다 해외에서 한식을 더 사랑하는 것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목표는.
홍콩의 여러 매체에 한식을 알릴 계획이다. <오름> 외에 홍콩의 일상이 될수 있는 한식 브랜드를 추가로 만들어 홍콩을 넘어 중국 상하이, 선전에 알리고자 한다.
- O’rm
- Ground Floor, Nos 2 & 8, On Wo Lane, Central, Hong Kong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