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고, 트렌드는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가만히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한 걸음 내딛는 이들만이 다음 장을 연다. 무수한 점들 가운데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기록된다는 것은, 재능과 노력, 그리고 그 시절의 행운이 함께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국의 다이닝, 나아가 세계의 다이닝에 점을 찍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진화 중이다.
한식의 시간을 잇다
고증이 아닌 지금과 소통하는 식탁.
살아 있는 한식을 위해 그가 건네는 것은 레시피가 아닌, 태도다.
조은희 <온지음> 셰프

‘우리’가 만든 영광
지난 3월, 홍콩에서 개최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장에 반가운 이름이 울려 퍼졌다.
조은희 셰프가 ‘올해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호명된 순간, 현장 곳곳에서는 아시아 전역 셰프 들의 뜨거운 축하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온지음>의 일원으로 올랐던 무대에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분이 어땠을까. 벅찬 감회를 들려줄 법도 한데, 그는 덤덤히 팀에 공을 돌렸다. “혼자 잘한다고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닙니다.
<온지음>이 있기에 제게도 기회가 온 것 아닐까요.” 사명감에 대해서는 좀 더 힘주어 말을 이어 갔다. “상의 무게에 맞는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저 자신이 좋아서 요리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무엇을 더 알려줄 수 있을지 제 행동을 돌아보게 돼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팀의 노고를 살피고, 수상의 기쁨보다 요리사로서의 사명감을 먼저 짊어지는 태도. 그것이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있었던 가장 명확한 좌표임을 알 수 있었다.
만드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옛 어른들이 늘 들려주신 선조의 통찰이다.
어머니의 밥상
셰프의 오늘을 만든 출발점은 어머니의 손맛에 닿아 있다. 전북 군산에서 자란 그는 사계절 달라지던 밥상을 생생히 기억한다. 겨울에는 설탕을 듬뿍 넣은 팥칼국수에 백김치와 동치미 중간쯤 되는 신건지를 곁들였고, 봄에는 향긋한 봄나물이, 여름에는 구수한 붕어찌개가, 가을에는 아작거리는 고구마순김치가 올랐다.
가짓수는 화려하지 않아 도, 매끼 한 번도 같은 음식이 오른 적이 없는 밥상은 어린 그의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심어졌다.
그리고 5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셰프의 삶에 선명한 이정표로 자라났다. “돌아가시고 나서 제 요리를 가만히 되돌아보니, 정말 100% 부모님 영향이더라고요. 소고기를 기름에 볶지 않아 깔끔했던 미역국이나, 숨을 적당히 죽여 무친 고구마순김치의 식감 같은 사소한 감각들이 제 안에 숨 쉬고 있었던 거죠.” <온지음>의 정갈한 맛의 뿌리에는, 그 시절 체득한 담백하고 순수한 미각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성실한 축적, 주방을 향한 이끌림
어린 시절이 그의 감각을 키웠다면, 궁중 음식 연구원에서 보낸 조교 생활은 그 감각 위에 살을 붙인 시간이었다. 왜 궁중 음식이었는지 묻자, 처음부터 애정이 있었던 건 아니라는 솔직한 고백.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 재학 시절 실습으로 나간 첫 직장에서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히 애정도 쌓였다는 것이다. 한복려 원장의 조교로 일하던 시절을 그는 “늘 바빴지만, 성격에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거든요. 시간에 쫓겨 뛰어다닐 때도 있었지만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매일 양념이며 조리 도구까지 전부 노트에 적어가며 숙지한 후 교실에 들어가고, 강의록을 작성한 후 곧장 다음 수업을 준비하길 8년. 한복려 원장의 꼼꼼한 가르침에 부응하기 위한 그 시절의 노력은 훗날 그가 모교에서 실기 수업을 할 때 큰 자산이 됐다. 그리고 마흔 즈음, 강단을 뒤로하고 <온지음 맛공방>이 라는 주방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움. 매일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만나는 일이 성정에 맞았다. 지칠 법도 한 주방의 일상이 그에게는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 새로움을 향한 갈망은 주방으로 이끈 계기를 넘어, 지금까지 요리 인생을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요리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서 30년을 했어도 모든 것을 섭렵할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의 요리를 보고 새롭게 배우는 과정이 지금도 무척 즐겁습니다.”
<온지음>의 요리가 고조리서 ‘고증’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친숙하게 먹어온 일상의 한식,
그리고 많은 어른께 배운 맛까지 파인다이닝 문법에 맞게 다듬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고조리서 너머, 살아 숨 쉬는 한식
‘온전하게 짓다’. <온지음>은 전통의 맛을 현대에 맞게 온전히 짓는 데 집중한다. 전통에 기반하는 만큼 이곳의 요리를 설명할 때면 늘 ‘고조리서’라는 단어가 따라붙지만, 셰프는 조심스레 경계한 다. 비단 그것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희 요리가 고조리서 ‘고증’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에 요. 오히려 우리가 친숙하게 먹어온 일상의 한식, 그리고 많은 어른께 배운 맛까지 파인 다이닝 문법에 맞게 다듬어내는 과정에 가깝죠.” 과거의 지혜를 오늘의 입맛에 맞게 조율하는 유연함은, 한식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임을 증명한다.
고조리서 속 계량이나 조리법이 비어 있는 공간은, 수십 년간 셰프와 팀원들이 체득해온 가장 한식다운 감각으로 채워 넣는다. 그 과정에서 법성 스님에게 배운 사찰 음식부터 전라도 반찬 고수들에게 배운 향토 음식의 손맛, 그리고 현존하는 요리 연구가들의 지혜, 근현대 소설 속 먹음직스러운 묘사까지 코스 위에서 조화롭게 엮인다. 때로는 문화적 · 시대적 특징을 근거로 상상력도 펼친다. ‘전복꽃찜’이 대표적이다.
도라지, 더덕, 밤, 버섯 등 고려인이 즐겨 먹은 채소를 가늘게 채 썰어 꽃처럼 전복 위에 올린 요리로, 문헌에는 없지만 셰프들이 이해한 고려 불교의 세밀한 미감에 착안했다. 손님이 기꺼이 즐길 수 있도록 다듬어내는 과정. 그것이 조은희 셰프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전통의 계승’이자, <온지음>의 한식이다. 셰프는 테이블에 오른 요리보다, 오르지 못한 재료를 예로 들며 그 기준점을 한 번 더 명확히 했다. 과거 반가나 궁중에서 귀하게 여긴 자라탕, 내장탕, 간전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의 맥락에서 훌륭한 유산이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들은 손님상에 올리기까지 끊임없는 고민을 거쳐야만 한다. “우설을 삶아 얇게 썰고 파채를 곁들이던 우설 냉채의 정갈한 맛을 보여주고 싶지만, 손님이 편안하게 즐기지 못한다면 레스토랑의 음식으로서 의미가 흐려지니까요.”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죠

그가 다음 세대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한식의 유산은 무엇일까. “100년이 지나면 우리가 지금 먹는 음식도 다 전통으로 인정받겠죠.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옛 어른들만이 알고 있는 오래된 한식이 더 많이 발굴되고 전해졌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셰프는 자신부터 오래, 건강히,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레스토랑 서비스가 끝나면 경복궁 돌담길을 걷고 뛴다. 자극적인 패스트푸드나 음료는 최대한 멀리하며 섬세한 미각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한식을 가르쳐준 어른들께서 마음이 화나면 그 감정이 요리에 담긴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죠. 요리를 오래 하다 보니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셰프가 길러내고 싶은 후학 역시 뛰어난 기술 이전에 따뜻함과 꾸준함을 갖춘 요리사다. 몸과 마음을 정갈히 다듬어 한 그릇을 빚어야 한다는 것. 조은희 셰프가 한식의 시간을 이어가는 방식은 이토록 꼿꼿하고 다정하다.
